[한국선교 130년 최초 선교사 알렌 이야기] (13) 초기선교사들의 인간적인 고초
입력 2014-05-02 02:27
동료 헤론과 잦은 ‘충돌’ 마음고생
초기선교사들의 어려움
1880년대 중반에 한국에 찾아온 초기 서양선교사들은 고충이 심했다. 그 당시 한국은 유난히 가난했다. 집이라고는 한옥 초가집이 대부분이고, 음식도 소금국에 잡곡밥을 먹기가 일쑤였다. 여름엔 모기 빈대 벼룩, 겨울에는 이, 더위와 추위는 참기가 힘들 정도였다. 추위와 더위를 겪고 나면 다들 탈진할 정도였다. 위생 상태도 심각했다. 우물물은 도랑에 버린 물이 다 스며드는 오물이었다. 실제 호주 선교사 한 사람이 이 물을 먹고 이질에 걸려 한국에 온지 사흘 만에 죽은 일도 있었다. 알렌 말로는 그 낯선 환경이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더구나 낯선 이방나라에 살면서 긴장한 탓에 늘 가슴이 조였고, 여가거리도 마땅한 것이 없었다. 한창 젊은 나이의 선교사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살 수밖에 없는 형편에 성격차이가 그대로 나타났다. 여자 선교사들은 그 수가 아주 적어서 인간관계를 맺기가 힘들었다. 벽지에서 혼자 살던 선교사도 있었다. 더러는 자살도 했고, 정신이상으로 본국에 실려 가기도 하였다.
초기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는 어느날 평양에 가면서 말 여덟 마리에 일상 생활필수품들을 가득 싣고 간 일이 있다. 프라이팬, 장화, 우산, 주전자, 이동식 침대, 변기, 과자, 스푼, 포크 등을 싣고 갔는데. 사람들에게 서양문명의 전시효과도 노렸겠지만 그만큼 한국에서 살기가 힘들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초기선교사들은 본국에 있을 때에는 버터에 고기를 먹고, 다양한 문화 생활을 즐기며 냉난방 잘된 집에서 살던 중산층들이다. 그랬던 그들이 가난하고 낯선 한국 땅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눈에 그려진다. 하지만 그들은 고난을 이겨내고, 한국을 세계기독교의 기수 국가로 만들었다.
알렌과 헤론의 불화
알렌은 유난히 키가 컸다. 당시 사진들을 보면 부인과 함께 찍은 사진은 꼭 알렌이 계단 2∼3칸 정도 내려와 포즈를 취한 것이 보인다. 외국공사들과 찍은 사진을 봐도 그가 유독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렌은 유난히 말 수가 적고 늘 점잖았다. 하지만 그런 알렌도 화를 참지 못하고, 인간관계의 갈등을 만든 일이 있다.
초기선교사들은 대부분 미국 명문대 출신들이었다. 알렌이나 스크랜턴 및 헤론은 이미 의학박사들이었고, 미국에서 교수 경력이 있는 이들도 많았다. 그중 헤론은 유난히 똑똑했고 자존심이 셌다. 그가 알렌과 함께 제중원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에 문제가 생겼다. 알렌은 헤론이 좋은 사람이지만 예의가 없다고 본부에 편지를 낸다. 이런 기록은 오래도록 남는다. 한번은 궁중에 함께 초대를 받았는데 헤론은 고종임금과 민비가 자리를 떠난 다음에야 늦게 나타났다. 화가난 알렌은 헤론이 투기심이 많아,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다고 격분하였고, 반대로 헤론의 부인은 알렌 면전에서 “당신은 한국에 돈 벌려 왔고, 따라서 딴 일을 하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스크랜턴은 알렌이 보기 싫다고 나가서 다른 진료소를 개설한다. 초기 선교사들 사이에도 갈등은 있었다.
알렌은 마침내 선교분부에 이렇게 투기심이 많은 선교사들과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편지를 보내고, 부산에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거기 가서 일하면서 선사들의 갈등 관계를 연구하겠다고 했다. 알렌은 1908년 ‘조선견문기’라는 책을 쓴다. 거기에 초기선교사들의 인간적인 문제들과 실상을 솔직하게 쓰고 있다. 변명이 아닌 진실을 쓰고 있다.
선교사들도 인간이었다
알렌은 1907년의 평양 대부흥운동을 잘 알고 있다. 알렌은 그 부흥운동을 통해 선교사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되돌아보고 땅을 치며 회개하게 하였으며 그로인해 본국에 돌아간 선교사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한다.
알렌은 의미있는 말을 남긴다. 선교사들은 대개 생각하듯이 초인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불가능한 정도의 높은 이상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기대도 하고 있기에 부담을 느끼며 괴로워했다.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놓고도 많이 다퉜다.
알렌은 신앙인의 모습에 대해 실로 놀라운 식견을 제시한다. 신앙인이 세상 사람과 특별히 다르다고 인식하지 말라는 것이다. 선교사들도 마찬가지로 한 인간이요 시민이라는 것이다. 선교사들에게는 남과 구분지어 군림하고 자신감 지나쳐 독단적이지 말라는 간곡한 호소를 했다.
알렌의 고백
알렌은 가까웠던 한 선교사에게 이런 글을 남긴다. “곧 우리는 다들 잘해보려고 애썼습니다. 선한 일을 찾아서 헤맸고 충실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빛나는 일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파쟁과 갈등에 때로 휘말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하늘처럼 쳐다보던 이들의 가슴은 더욱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질고 속에서 살아간 초기 선교사들의 애환과 고민을 애정을 가지고 바라봐야 할 것이다.
민경배 백석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