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불행을 당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 사진 속 그들은 존엄했다
입력 2014-05-02 02:20
세바스치앙 살가두, 나의 땅에서 온 지구로/세바스치앙 살가두, 이자벨 프랑크/솔빛길
흑백사진 속 인간들은 극한의 상황에 처해있다. 그렇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값싼 연민이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순간에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사진작가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사진 얘기다. 빈곤과 기아, 전쟁과 폭력 등의 이유로 떠돌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은 그의 사진은 공개될 때마다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책은 현존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불리는 그의 자전 에세이다. 안정된 삶을 버리고 위험한 곳을 누비는 사진작가로 살아온 칠십 평생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1944년 브라질의 한 농장주 아들로 태어난 그는 브라질 정부의 군사독재에 반대해 20대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경제학을 전공한 뒤 국제커피기구(ICO)에서 일하면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1971년 처음 출장 간 아프리카의 모습에 매료된 그는 프리랜서 사진작가로의 길을 선택한다. 이후 그가 아프리카는 물론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진행한 ‘아프리카’ ‘사헬, 비탄에 빠진 인간’ ‘엑소더스’ ‘인간의 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르포르타주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2004년 시작한 ‘제네시스’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원대한 지구의 아름다움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까지 마무리했다.
그의 사진처럼, 책 역시 거들먹거림이나 불필요한 수식어가 하나도 없다. 간결하고 명료하게 그의 삶과 사진에 대해 설명할 뿐이다.
“나는 항상 인간을 존엄한 모습으로 보여주고자 노력해왔다. 그들 대부분은 잔인한 운명, 비극적 사건의 희생자들이었다. 그들은 집을 잃고서, 혹은 가까운 사람, 자기 자식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사진에 찍혔다. 대부분 무고한 사람들, 그런 불행을 당할 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모두가 그런 일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사진을 찍었다. 그건 내 시각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내 사진을 보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나의 목표는 어떤 교훈을 주는 것도 아니요, 연민을 자극해서 양심을 촉구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도덕적·윤리적 의무를 느꼈기 때문에 그 이미지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사진은 투쟁도, 서원도 아니고 그저 내 인생일 뿐이라고 말하는 거장의 삶은 그의 사진 이상의 큰 울림을 준다. 이세진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