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동화책 읽는다 봄처럼 새롭다
입력 2014-05-02 02:13
어린 시절 읽은 동화책은 처음 접하는 이야기이자 문학 작품이다. 아직 가 보지 못한 세상에 대해 환상과 기대를 품게 하고, 때론 정말 무서운 곳일 거야 잔뜩 겁먹게도 만드는 손 안의 작은 세상이다. 어렸을 때 읽은 것으로 끝인 줄 알았던 동화책을, 요즘 부쩍 다시 꺼내 읽는 이들이 늘었다. 계몽사나 금성출판사 전집 등 추억의 책을 손에 넣기 위해 헌책방을 헤매는 이들도 있다. 그 시절 꿈꿨던 세상과 지금 어른이 되어 살고 있는 세상이 너무 다르기 때문인 걸까.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반비)은 책 좀 읽는다는 탐서가 17명이 다시 꺼내 읽은 세계 명작 이야기다. 똑같은 책도 인생의 어느 시기에 읽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독서는 늘 새로운 경험이다. 동화책 다시 읽기가 그저 어린 시절 추억 떠올리기에 그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학자 우석훈씨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읽었다. 그가 다시 그 책을 떠올린 건, ‘88만원 세대’를 집필하던 2006년 크리스마스 이브다. 그는 스크루지 영감을 2000년대 초반 한국 버전으로 불러내자는 아이디어를 거기서 얻었고, 그렇게 쓴 책은 그를 전업 작가의 길로 이끌었다. 어린 시절과 달리 이제 그는 경제학자의 눈으로 이 책을 읽는다. 그리고 디킨스가 가난한 자들의 무분별한 출산으로 위기가 닥치리라는 맬서스의 인구학적 경고를 구두쇠 스크루지 이야기를 통해 “서로 사랑하라”는 성경적이고 문학적인 메시지로 멋지게 반박했음을 읽어낸다. “스크루지 이야기는 21세기 한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용훈 서울도서관장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끄집어낸 책은 ‘꿈을 찍는 사진관’(강소천·문음사)이다. 그 책을 다시 읽기 위해 헌책방을 뒤지고, 마침내 이 책이 포함된 ‘강소천 아동문학 전집’이 지방의 헌책방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주문했다. 그는 “그 시절 그런 사진관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어린 시절의 꿈은 잊었지만 이제부터 새로운 꿈을 꾸어야겠다. 꿈을 꾸는 사람만이 자신과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다짐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쓴 ‘책으로 가는 문’(현암사)은 거장의 동화 읽기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최고의 상상력 대가인 그가 지난해 일본의 이와나미 소년문고 창간 60주년을 맞아 문고판 전집 중 평생 즐겨 읽은 작품 50권을 골라 소개한다. 만화나 영화 같은 영상보다 책으로 작품을 만났을 때 맛본 상상의 기쁨이 더 크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혼자 읽기보다 자녀와 함께 동화책 읽기를 고민하는 부모들이라면 ‘놓치면 안 될 우리 아이 책’(고래가 숨쉬는 도서관)을 한 번 읽어보자. 어린이책 전문가 28명이 유아 시절부터 초등학생 시기까지 저마다의 이유로 읽으면 좋을 책을 골라 짤막하게 소개한 서평집이다.
가령 동화작가 노경실은 로알드 달의 ‘멋진 여우 씨’(논장)를 추천하며 삶과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을 품게 하는 문학의 힘을 강조한다. “질문이 많고 의문이 풍부한 아이는 그만큼 자기 삶에 대해 진지할 수밖에 없다. 또한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몇 페이지 안되는 동화책에서도 우리는 사람과 삶에 대해 풍부한 사고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 그의 말은 동화책을 아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읽어야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어느 잔혹 동화보다 더 끔찍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2014년 5월, 나만의 동화책을 찾아 다시 펼쳐보는 건 어떨까.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