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피해자 가족 심리 지원 어떻게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30일로 보름째다. 실종자 가족 수백명이 아직도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돌아오지 못한 90명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시점에 실종자 가족의 치유를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전문가들도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빠른 구조’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심리적·육체적 상태는 극단적 탈진상태로 치닫고 있다. 조심스러운 상황이지만 이들에 대한 심리적 지원을 촉구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섣부른 위로 대신 그들을 심리적으로 지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적인 공간’ 필요=사고발생 후 15일 동안 진도실내체육관에는 불이 꺼진 적이 없다. 방송사 카메라는 온종일 돌아갔다. 실종자 가족은 24시간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된 시간을 보냈다. 사적 공간은 전혀 허락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 쌓이는 짐과 이불 몇 채가 실종자 가족들의 개별 공간을 구분해줄 뿐이다. 각자 다른 사정을 가진 이들이 구분 없이 뒤엉켜 지내면서 이들의 슬픔과 분노, 스트레스는 증폭됐다.
기껏 마음을 진정시키면 누군가의 통곡에 덩달아 눈물이 났다. 실신하듯 누워 있다가도 누군가 고함을 치면 또 분노가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수백명이 모여 있는 곳에 사적인 공간이 전혀 없으면 감정 조절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도 스트레스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실종자 가족들에게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쉴 수 있는 사적인 공간’ 제공이 시급하다.
김성완 전남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극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일수록 안정된 곳에서 숙면을 취하지 않으면 면역력이 떨어져 병에 걸리기 쉽다”며 “사고 수습이 장기화되면서 실종자 가족의 피로 누적이 심해지기 때문에 제대로 된 휴식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도실내체육관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진과 심리지원팀이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찾는 실종자 가족은 많지 않다. 자신의 마음을 돌볼 여력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환경 탓도 있다.
◆밀착 서비스 제공됐어야=정신의학과 전문의들은 재난 피해자의 심리적 지원에서도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초기 대응은 피해자의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대형 항공사들이 사고가 생겼을 때 모든 승객에게 1대 1로 전담하는 직원을 배치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래야 피해를 입은 승객들이 항공사를 믿고 사고 수습을 차분하게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밀착 서비스는 거창한 게 아니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지 않도록 대신 알아봐 주는 것, 먹을 것을 갖다 주거나 이불을 챙겨다 주는 것, 가끔 손 한번 잡아주는 것,
이렇게 소소하고 세심한 심부름꾼이 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떤 공무원도 심부름꾼이 되어주지 못했다.
심리적 지원의 초기 대응은 실패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 속한 전문가들이 언제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현장에 상주하고 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자원봉사에 나선 전문가들에게 선뜻 마음을 열지 않았다.
이병철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클리닉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 이런 상황이 쉽게 납득된다. “식사나 잠자리처럼 사소한 것들을 가까이에서 계속 챙겨준 사람과 어느날 갑자기 도와주겠다며 나타난 정신과 전문의 중 누구에게 마음을 털어놓기 쉽겠습니까. 신뢰 관계가 형성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국가 차원의 ‘재난심리지원센터’ 필요=사고가 수습돼 희생자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면 더 이상 정부가 개입할 방법이 없다. 정부는 찾아가는 서비스를 고심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뚜렷한 대책은 없다.
단원고에는 적절한 심리치료 시스템이 갖춰진 상태다. 문제는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다음이다. 특히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이 몰려 사는 곳은 위험 지역으로 꼽힌다. 이를테면 한 빌라 2층에는 생존자 가족이, 3층에는 희생자 가족이 사는 경우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고 피해자들끼리 서로 상처를 주고받다 떠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면 결국 지역사회가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전문가는 보다 세밀한 조직 구성을 제안했다. 통·반 단위의 작은 조직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이 얼굴을 맞대고 대책을 논의하는 방식이다. 나아가 전문적인 심리적 개입과 지원을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한지 판단할 수 있도록 대책 논의에 전문가도 포함시키자는 제안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스템 안에서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지금은 전문가들의 자원봉사에 의존하고 있어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 차원의 ‘재난심리지원센터’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세월호 침몰 참사] 수백명 뒤엉켜 슬픔·분노 증폭… ‘사적 공간’ 절실
입력 2014-05-01 04:12 수정 2014-05-01 1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