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입원 학생들 서로서로 위로·격려… 상당수 안정 찾아가
입력 2014-05-01 02:41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남아 고대안산병원에 입원해 있던 단원고 학생 74명 중 70명이 30일 우려 속에 퇴원했다. 사고가 난 지 보름만이다.
이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사고 이후 생긴 트라우마는 언제 어떤 식으로 다시 아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사고 사실을 받아들이고 당시의 공포감에서 벗어나는 것 외에도 친구들과 함께 걷던 등굣길을 혼자 걷는 것, 선생님도 친구들도 모두 사라진 텅 빈 교실로 돌아가는 것, 교실 곳곳에 놓인 친구들의 유품과 마주하는 것 등 이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의 순간은 여전히 산적해 있다.
◇“퇴원 가능한 상태…트라우마 위험은 여전”=차상훈 고대안산병원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입원 학생 가운데 상태를 더 지켜봐야 하는 4명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이 모두 퇴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입원 학생 상당수의 상태가 많이 호전됐고 퇴원 후 외래진료가 가능하다고 판단돼 환자 본인과 보호자 동의를 얻어 퇴원시키게 됐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퇴원 후에도 통원 치료 등을 통해 학생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치료를 진행할 계획이다.
퇴원이 미뤄진 4명에 대해서는 “심리적, 정신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지만 신체적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어 치료를 더 진행한 뒤 순차적으로 퇴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생존 학생들은 비교적 담대하게 충격을 견뎌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창수 고대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학생들이 어른들의 우려보다 더 강하게 잘 받아들이고 이겨내면서 마음의 상처를 달래가고 있다”며 “스스로 안정을 찾으려 노력하고 서로 격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사고 당시의 심상과 이로 인한 불안감은 쉽게 정리되지 않는 상태다. 한 과장은 “큰일 이후 (당시 순간이) 머릿속에서 사진 필름처럼 지나가고, 생각과 결부된 감정들이 문득문득 일어나는 증상은 아직도 있다”며 “사고를 회상하는 과정에 또 트라우마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당초 병원 측은 학생들이 사망자 수 등 사고 관련 소식을 접하지 않도록 유도했으나 학생들은 스마트폰이나 주변인 등 개인적 경로를 통해 현재 상황을 대부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사고 순간을 떠오르게 하는 요소는 가급적 차단하는 게 좋다고 병원 측은 강조했다.
차 병원장은 “학생들이 퇴원을 앞두고 줄곧 ‘일상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며 “주변의 지나친 관심은 빠른 치유와 회복에 독이 될 수 있으니 곁에서 조용히 격려만 해 달라”고 당부했다.
◇장기적 치유 과정 돌입=의료진과 전문가, 학부모들은 생존 학생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급적 빨리 학교로 복귀해 익숙한 환경에서 치료받는 게 좋다”고 입을 모은다. 오랫동안 생활해온 편안한 곳에서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회복을 도모하는 편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일단 수업은 최대한 정상적으로 진행된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정상 생활에서 너무 오래 떨어뜨려 놓는 것은 좋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단원고는 이날 교과수업과 심리안정 프로그램을 병행했고, 1일부터는 1∼3학년 모두 교과수업을 평소대로 진행하되 상황에 따라 수업 내용을 바꾸기로 했다. 심리안정 프로그램에는 개별 상담과 집단 상담, 미술치료, 놀이치료 등이 포함된다. 교육부와 단원고 등은 야외 자연치유 프로그램도 검토하고 있다.
고영훈 고대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부 학생들이 불안과 수면장애, 우울감을 호소하지만 이건 당연하고 정상적인 반응”이라며 “학생들 대부분이 급성기를 지나 학교 복귀를 위한 준비 단계를 밟아 왔기 때문에 잘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까지 단원고 희생자 165명 중 160명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됐다. 경기교육청은 임시분향소에 안치된 159명의 영정과 위패를 29일 안산 화랑유원지 정부합동분향소로 옮기는 과정에서 안내 문자가 피해 학생들의 전화번호로 전송돼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점에 대해 사과했다.
안산=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