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안전 관련 업무 무분별 민간 위탁… 관리 ‘대충대충’
입력 2014-05-01 04:19
“정부가 안전사고 방조” 비판 목소리
정부가 안전 관련 업무를 무분별하게 공공기관과 민간단체에 위탁하고도 수탁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안전사고를 방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특히 퇴직 공무원이 수탁기관에 낙하산으로 재취업해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현직 공무원은 퇴직 후 자리 보전을 위해 이를 묵인하는 ‘검은 커넥션’이 형성돼 안전 사각지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해양수산부의 여객선 안전관리 및 선박 검사 업무를 위탁받은 해운조합과 한국선급이 대표적이다. 선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해운조합이 여객선 안전운항 관리와 여객선터미널을 위탁 관리하면서 승객 안전보다는 업체 부담을 덜어주는 식으로 업무를 해왔는데도 해수부는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았다. 지난 25일 사퇴한 주성호 해운조합 이사장은 국토해양부 차관 출신이다. 정부를 대신해 국내 선박의 정기검사 등 각종 검사를 실시하는 한국선급과 선박안전기술공단도 청해진해운이 세월호를 무리하게 증축했는데도 이를 묵인했다. 여수지방해양항만청장 출신의 부원찬 선박안전기술공단 이사장은 부실한 안전점검의 책임을 지고 30일 사임했다.
선박안전기술공단의 한 간부는 2006년부터 선박 안전검사에서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업체로부터 3700만원을 받아 2012년 구속됐다. 세월호가 안개 속에서 무리한 운항을 하는데도 이를 방조한 해운조합의 한 간부는 선박 사고를 일으킨 해운사의 보험금 과다 청구를 묵인한 대가로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검찰에 체포됐다. 소방 안전관리와 교육 등을 대행하는 한국소방안전협회도 회장 등 주요 보직을 소방방재청과 지방 소방공무원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행정 권한의 위임 및 위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행정기관은 조사·검사·검정·관리 사무 등 국민의 권리·의무와 직접 관계되지 않는 업무만 위탁할 수 있다. 단순 행정사무, 공익성보다 능률성이 현저히 요청되는 사무, 특수한 전문지식 및 기술이 필요한 사무 등이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보듯 정부는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안전 업무까지 협회나 민간단체에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또 행정기관이 업무를 민간에 위탁한 뒤 수탁기관을 지휘·감독하고 사무처리가 위법하거나 부당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취소하거나 정지시킬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수탁기관에 재취업한 퇴직 공무원들의 로비에 밀려 제대로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지 감독하지 못하고 있다.
감사원은 2012년 특정감사 당시 국토해양부가 시·도지사 인가를 받아 설립된 자동차정비사업조합에 자동차 관리 업무를 위탁한 뒤 제대로 지도·감독을 하지 않고 있다며 시정토록 통보했다.
정부와 수탁기관의 공생관계에는 공직자윤리법의 허점이 작용했다. 공직자윤리법상 퇴직 공직자의 사기업체 취업제한 대상은 ‘사기업체의 공동이익과 상호협력 등을 위해 설립된 법인 단체’로 애매하게 돼 있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업무를 대행하는 민간협회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국무총리실은 부처별로 업무 위임·위탁 현황을 파악해 업무 위탁이 적절했는지, 위탁 이후 지도·감독을 철저히 했는지 따질 방침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행정기관이 업무를 제대로 위임하지 않고 집행 여부도 감시하지 않고 있다”며 “그러면서 업체가 지키기 어려운 규제를 만들어 놓으니 이를 해결하려는 수탁기관의 경쟁력은 대관 로비력으로 결정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