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동진 ‘영덕 축산항’ 을 아시나요?

입력 2014-05-01 03:05


신행정수도 세종시의 정동쪽 위치… 조선시대에도 ‘한양의 정동’

신(新)정동진을 아시는지?

조선시대 한양의 광화문에서 동쪽에 위치한 강릉의 아담한 포구를 정동진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신행정수도인 세종시 동쪽에 위치한 신정동진은 어디일까? 북위 36도 30분에 위치한 세종시에서 동쪽으로 일직선을 그으면 경북 영덕군 축산면의 말미산(113.5m) 정상이 나온다. 말꼬리 형상의 말미산은 영덕블루로드와 해파랑길이 겹쳐 지나가는 바닷가의 길쭉한 산으로 대게잡이 어항으로 유명한 축산항과 이웃하고 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영덕의 영해는 조선시대에 정동(正東)으로 불렸다. 당시 영해는 축산면을 포함한 넓은 지역으로 영남대 박물관이 소장한 18세기 고지도 팔도전도(八道全圖)에는 경상도 영해가 정동, 황해도 풍천이 정서, 전라도 해남이 정남, 그리고 함경도 온성이 정북으로 기록되어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강릉 정동진, 인천, 장흥, 중강진이 각각 정동, 정서, 정남, 정북으로 불리는 현대의 방위와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와 현대의 방위는 왜 이처럼 큰 차이가 날까? 영덕군청의 백호진 문화관광과장은 “조선 정조 때 학자 서호수가 중국 청나라를 여행하면서 쓴 연행기(燕行紀)와 조선 후기 이유원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 의하면 조선시대의 동서남북 방향축이 현대에 비해 30∼45도 우측으로 기울었다”고 밝혔다. 중국에 대한 사대의 사상에 따라 북경(베이징)을 방향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다. ‘삼천리금수강산’도 남북 길이가 아니라 동서 600리와 남북 2400리를 합한 개념인 것으로 전해진다.

어쨌든 영덕은 조선시대의 방향감각으로도 정동이고, 신행정수도인 세종시를 기준으로 한 현대적 방위개념으로도 정동인 셈이다. 영덕군이 지난해 7월 1일 ‘신정동진’ 선포식을 갖고 축산항 일대를 복합해양문화 관광명소로 조성키로 한 이유다.

신정동진은 금빛 모래가 아름다운 축산해변과 축산천을 가로지르는 현수교인 블루로드다리, 그리고 죽도산 유원지와 축산항 및 축산리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말미산, 대소산, 죽도산, 와우산에 둘러싸인 축산리마을은 푸른 지붕이 인상적인 어촌으로 개발에서 소외된 덕분에 1980년대의 풍경이 오롯하게 남아있다. 특히 축산항은 동쪽으로는 죽도산, 북쪽으로는 긴 방파제가 동해의 거친 파도를 막아줘 호수처럼 잔잔하다.

신정동진은 7번국도 축산교차로에서 보리 이삭이 패기 시작한 들판을 달려 접근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신정동진의 숨은 매력을 만나고 싶다면 영덕블루로드를 걷는 게 좋다. 영덕블루로드는 강구버스터미널에서 고래불해수욕장까지 50㎞로 A코스 강구버스터미널∼해맞이공원 17.5㎞, B코스 해맞이공원∼축산항 15㎞, C코스 축산항∼고래불해수욕장 17.5㎞로 이루어져 있다.

바다낚시로 유명한 석리와 대게원조마을인 차유마을을 통과하는 영덕블루로드 B코스는 동해안 최고의 해안절경을 자랑한다. 쪽빛 바다와 함께하는 해안선을 따라 걷다보면 이내 말미산의 짙은 녹음 속으로 빨려든다. 솔향 그윽한 말미산 오솔길은 소나무 사이로 바다가 언뜻언뜻 보이는 구간으로 발아래 갯바위에 부딪히는 파도가 장엄한 오케스트라 선율처럼 들린다.

말미산에서 하산하면 곧 모래사장의 축산해변을 만나게 된다. 활처럼 휘어진 축산해변은 길이는 300m 남짓에 불과하지만 연두색 블루로드다리와 죽도산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굵은 모래알로 이루어진 축산해변은 영덕블루로드 탐방객들이 잠시 쉬어가는 휴식처로 죽도산을 배경으로 한 해맞이 명소이기도 하다.

야간조명이 빚어내는 풍경이 황홀한 139m 길이의 블루로드다리는 26m 높이의 현수교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금씩 출렁이는 출렁다리이다. 블루로드다리 아래의 모래톱은 축산천과 바다가 이웃한 경계지역으로 갈매기들의 쉼터 역할을 한다. 이른 아침에 수평선이 붉게 물들면 모래톱에서 휴식을 취하던 갈매기들이 날아올라 너울너울 날갯짓을 하며 태양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신정동진의 비경은 죽도산 정상에 위치한 전망대에 올라야 볼 수 있다. 화살 재료로 쓰였던 시누대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죽도산(竹島山)은 본래 죽도로 불리는 섬이었다. 일제강점기에 강과 바다를 매립해 마을이 형성됐고 육지와 하나가 된 섬은 곧 산이 되었다. 죽도산은 해발 87m 높이의 낮은 산으로 정상까지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봄에는 분홍색 복숭아꽃이 나무데크 주변에서 화사한 얼굴로 탐방객들을 맞는다.

나무데크를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오르는 죽도산 정상에는 전망대가 솟아있다. 일제강점기에 세운 등대가 있었으나 일제 말에 미군들의 폭격 표적이 된다 해서 철거됐다. 광복 후에 다시 등대를 세웠지만 몇 해 전 헐고 엘리베이터를 갖춘 전망대를 다시 세웠다.

전망대는 신정동진을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남쪽으로는 블루로드다리와 축산해변 뒤로 북위 36도 30분이 지나는 말미산이 가깝다. 서쪽으로는 축산항과 축산천 사이에 위치한 마을과 봉수대로 유명한 대소산(278m)이 정겹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영양 남씨 발상지 기념비가 위치한 와우산(66m)을 넘어 고해불해변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이 곡선을 그린다.

죽도산 전망대 아래 군부대 건물 옆엔 전망 좋은 찻집 ‘코난 바다를 품다’가 있다. 이곳에서 나무데크를 따라 하산하면 바닷가 해안선을 에두르는 나무데크와 연결된다. 바닷가 나무데크는 시누대숲을 통과하는 구간도 있어 바닷바람이 불 때는 댓잎이 서걱거리는 소리가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영덕=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