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생존 몸부림 ‘세월호’ 보는 듯… 희생자 헌정판 된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입력 2014-05-01 03:31


17∼18세 아이들이 간구했던 神… 그리고 “엄마…”

구조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말한다.

“신이 보고 계셔. 이 섬에는 우리 말고 한 분이 더 계셔. 저 위에서 우리를 보고 계셔.”

‘의식의 과잉’이었을까. ‘세월호’ 속에 갇혀 있던 아이들의 대사로 들렸다.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종로33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펼쳐진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마치 세월호 아이들의 대화와 노래 같았다.

6·25전쟁 중 한 섬에 고립된 어린 병사들은 구조를 바라다 지쳐 탈진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 절박한 상황이 마지막으로 치닫자 구조가 아니라 구원을 바라는 어린 병사들. 관객은 침울했다.

‘여신님…’은 1952년 한국전쟁 당시 부산을 떠난 포로 이송선이 풍랑에 좌초되면서 승선한 여섯 명이 한 섬에 고립된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17∼18세 됨직한 소년병사와 국군·인민군 장교 등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좌초된 배를 수리할 수만 있다면, 살아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다.

다만 유일하게 배를 고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인민군 포로 순호가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탈출이 쉽지 않다. 이에 다른 이들은 순호가 배 수리에 나설 수 있도록 ‘여신님이 보고 계셔 대작전’을 진행한다.

무대 미술은 절박한 현실과 달리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굵은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고 그 뒤로 키를 넘어서는 갈대가 무성하다. 갈대 뒤로 해가 뜨고 노을이 지길 반복한다. 여신은 갈대 숲 사이로 걸어 나와 그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다독인다. 손에 잡히지 않는 여신이다.

몽롱한 순간도 잠시. 하늘에선 비행기 소리, 저 멀리 해상에선 포격 소리가 요란하다. 섬광이 갈대와 자작나무 사이로 강하게 비친다. 어린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신께 구원한다.

“여신님, 다 보여요? 저는 다 알았어요. 이제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그들은 구원을 바라며 마음속에 자리한 그리운 이들을 꺼낸다. 혼자 계시는 어머니, 사상이 달라 끝내 따라가지 못했던 아버지, 짝사랑하던 이웃집 누나, 방석집에서 오빠를 위해 일하는 여동생, 아빠의 수염이 따갑다며 밀어내던 딸 등이 그들 안에 있었다. ‘여신님’을 믿는 순진무구한 순호가 궁극의 신을 향한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하늘이 그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인민군 창섭의 여신 ‘어머니’는 창섭에게 말한다.

“꼭 살아라. 벌을 받아도 내가 받고, 지옥 불에 떨어져도 내가 떨어질거니 꼭 살아라.”

뮤지컬에 나오는 ‘난 울지 않는다’ ‘그대가 보시기에’ 등의 합창과 춤은 세월호 아이들이 선실에서 부르는 노래처럼 ‘꿈속의 꿈’이 된다. 그 폐쇄된 배 안에서 의식과 무의식 속을 넘나들며 꿈꾸던 아이들. “엄마 난 괜찮아. 엄마 미안해”라며 눈을 감은 채 흘리는 눈물 같이 느껴진다.

지난해 초연 무대로 큰 인기를 얻었던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2014년판은 관객 각자가 마음으로 올리는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헌정판’이 되고 만다. 오는 7월 27일까지 계속된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