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규호]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

입력 2014-05-01 02:38


대한의사협회가 창립 이래 처음 자신들이 뽑은 회장을 탄핵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의사들이 대정부 투쟁의 강도를 높인다는 의미라고 한다. 의사들이 이러는 이유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누가복음에는 잘 알려진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있다. ‘길 가다가 강도를 당해 가진 것을 빼앗기고 크게 다쳐 쓰러진 사람을 근처를 지나던 사마리아인이 치료해주고, 주막으로 데려가 주인에게 치료비와 숙박비, 여비를 맡기며 돌봐 달라고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1970년대 초 의대에 입학한 우리는 대학과정 6년과 수련기간 5년 동안 존경하는 교수와 선배들로부터 “화타(명의)가 되기보다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돼라”는 가르침을 받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했다. 대학 기숙사에서 밤새우며 원서를 펴들고 중요한 부분들을 외우고 익히기 위해 공부했다. 해부실습 시간에는 역한 포르말린 냄새를 풍기는 시신을 해부하고 부분부분 뜯어 혈관과 신경, 근육을 자세히 살피면서 우리에게 지식을 주기 위해 기증된 시신에 대해 감사하고 생명에 대한 존중심과 측은지심을 길렀다.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에는 응급실에서 며칠씩 밤샘근무를 했고, 전공의 숙소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교수 회진과 학술토론 및 증례토의를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이 모두가 선배들이 걸어온 대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기 위함이었다.

의사는 환자의 국적이나 성별, 연령은 물론 그가 어떤 경우에 처했든 끝까지 치료하고 돌봐주어야 한다. 설혹 그가 강도짓을 하다가 다친 범죄인이라 할지라도 상처를 치료해주고 돌봐주어야 하는 것이 참 의사의 길이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적어도 우리 시대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가르쳤다.

그러나 현행 의료제도는 아쉽게도 의사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을 허락하지 않는다. 환자에게 측은지심을 가지고, 환자에게 좀 더 도움이 되는 진료를 하거나 환자의 편의를 봐주는 것은 불법이 되기 십상이다. 뿐만 아니라 환자를 위해 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에서 정한 범위 이상의 진료를 하면 과잉진료가 되고, 항목에 없는 진료를 하거나 급여 또는 비급여 항목으로 등재되지 않은 의약품이나 의료 기구를 사용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 낮은 의료수가는 병원 경영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렇게 규제를 당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의사들은 규제 범위 내에서 적절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항목을 찾아내어 진료 수입을 창출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생기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규제가 오히려 과잉진료를 더 부추기고 있다는 역설도 가능한 것이다.

지난 30여년간 우리 의료 환경은 엄청나게 변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 교육이나 병원 운영의 관행은 크게 변한 게 없다. 의사들은 좁은 진료실과 연구실에 갇혀 세상이 변하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것은 분명 의사들의 잘못이다. 그러나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보살펴야 하는 의사의 본분은 변할 수 없다.

젊음을 희생해 가며 열심히 공부하고 가르침을 받은 대로 ‘선한 사마리아인을 닮은’ 참다운 의사가 되기를 원했던 많은 의사들은 어느덧 집세와 직원 월급을 걱정하며 눈치껏 과잉진료를 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게 되고, 이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게 된 사실에 분개한다. 이것이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근본 이유다.

의사들은 이제 비전문가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의료제도와 건강보험제도 및 의료수가 책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주장한다. 의료가 지나치게 영리주의로 흘러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 더 소외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해야만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서 의사의 본분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규호 연세대 의대 교수·정형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