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국민 사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면 어떤가

입력 2014-05-01 02:31

머리 숙이는데 인색한 대통령이나 평가 표변하는 야당이나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한 ‘대통령 사과’ 문제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청와대와 야당의 모습을 보면 참 안쓰럽다. 대형 참사를 겪은 희생자 가족과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진심어린 사과를 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시기와 형식, 내용 면에서 부적절하고 부실한 사과를 하자 정치적 논란거리가 됐다. 민망하고 딱한 일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30일 “유가족들이 비공개 사과는 사과가 아니라고 했다”는 기자들의 전언에 “유감스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말이 유족들에게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비쳐지는 것을 걱정한 듯 잠시 뒤 “순전히 저 개인적인 말”이라고 해명했다. 민 대변인은 또 추후 별도의 대국민 사과 가능성을 묻자 “시기와 방법에 대해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가 “어제(29일) 사과가 나온 마당에 대변인이 다음 사과가 있을 것 같다고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번복하기도 했다.

대통령 사과 문제와 관련한 청와대 대변인의 이런 언행은 세월호 침몰 직후 우왕좌왕한 정부를 연상케 한다. 박 대통령의 생각과 청와대 비서실의 정무적 판단이 전혀 정리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준다. 대형 사고 발생시 대통령이 진정성을 갖고 국민의 아픈 마음을 잘 어루만져 주면 사태를 수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국민통합에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연평도 피격이나 천안함 피폭 같은 국가 안보위기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게 정답이다. 그러나 이번과 같은 국내 사건·사고, 특히 수백명의 어린 학생들이 희생된 참사 때는 대통령이 피해자 가족, 국민과 함께 슬픔을 나누면서 그들에게 몇 번이고 머리 숙여 사과하는 것이 옳다. 박 대통령은 사고 이튿날 진도 현장을 방문했을 때 사과하는 것이 옳았다. 13일만에 첫 사과를 하면서 성명 발표나 기자회견 형식이 아닌 국무회의 석상에서 사과한 것은 누가 봐도 부적절했다.

박 대통령은 사고 수습이 마무리될 시점에 다시 한번 사과를 할 것으로 관측된다. 두 번 정도로 끝낼 계획인 듯하다. 자신을 뽑아준 국민들에게 고개 숙이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사과를 하면 어떤가. 유가족들이 ‘그만하라’ 할 때까지 사과하고 또 사과해야 한다는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의 말은 백번 맞다.

대통령 사과에 대한 새정치민주연합의 평가 표변도 볼썽사납다. 김한길 공동대표는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사과’ 직후 “국민께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긍정적으로 평했다. 그런 김 대표가 다음날엔 “대통령 사과가 국민과 유가족에게 분노를 더하고 말았다”며 강경 공세모드로 선회했다. ‘비공개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는 유가족들의 입장 표명에 줏대 없이 돌아선 것이다.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제1야당의 모습에 씁쓸함을 갖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