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전석운] 국가 침몰시킨 해운 비리
입력 2014-05-01 02:37
세월호 침몰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 봐도 이 사고는 비리와 부정이 누적된 시스템이 낳은 인재(人災)다. 302명의 사망·실종자를 만든 대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선박의 안전을 점검하고 감시하는 구조를 취약하게 만든 비리와 부정을 척결해야 한다.
승객 476명을 태운 대형 여객선이 어뢰를 맞은 것도 아니고 암초에 부딪힌 것도 아닌데 운항 도중 가라앉았다. 환한 아침시간 뭍에서 불과 3㎞ 떨어진 얕은 바다 위를 달리던 세월호가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기우뚱한 배가 침몰하기까지 2시간20분도 안 걸렸다.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방송만 믿고 객실에 머물렀던 승객들은 안타깝게도 배와 함께 물속으로 사라졌다. 보름 동안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살아나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희생자 중 80% 정도가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이 배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예고된 人災
이 기막힌 사고가 일어날 거라 예상했다면 어떤 승객도 배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의 구조적 결함을 알고 사전에 경고한 사람들이 있었다. 예전 선장과 일부 선원들이었다. 그러나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그 경고를 묵살했다. 청해진해운은 건조된 지 18년 된 노령 선박을 일본에서 사들인 뒤 안정성을 위협할 정도로 중대한 구조변경 공사를 했다. 화물차 등이 드나드는 설비인 사이드램프를 배에서 뜯어낸 것이다. 건조 당시부터 선수 오른쪽에 장착돼 있던 이 구조물은 중량이 50t에 달했다.
이걸 뜯어내면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쏠리게 마련인데 보완장치를 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화물을 싣지 않고 운항해도 배가 흔들려 선반 위 물건이 떨어질 정도였다는 게 일부 선원들의 증언이다. 예전 이 배를 몰았던 선장은 이런 사실을 회사에 알리고 사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회사는 해고 위협으로 응수하며 입단속에 나섰다. 승객들을 버려두고 탈출했던 이준석 선장도 배의 복원력이 떨어진 걸 알았다는 게 범정부합동조사본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선사가 배의 구조를 고치면 안전에 이상이 없는지 일일이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선급과 선박안전공단 등은 세월호에 대해 ‘양호’ 진단을 내렸다. 이해할 수 없다. 선원들조차 우려할 만큼 배의 복원력이 취약해졌는데 관련 기관들은 무얼 하고 있었던 것일까.
세월호의 상습 과적도 문제다. 5층 객실을 증축하면서 안정성이 떨어졌고 객실이 늘어난 무게만큼 화물을 적게 실어야 하는데도 과적 운항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적정치의 3배를 초과한 적도 지난 1년간 13차례에 달했다. 과적 선박을 단속해야 할 해경 등이 뒷짐 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렵다. 사고 전날 인천항에 낀 짙은 안개로 다른 배들은 모두 발이 묶였는데 유독 세월호만 출항 허가를 받았다. 사고 전날에도 세월호엔 과적이 의심될 만큼 많은 화물이 실렸다는 증언이 나왔는데 인천해경은 무슨 근거로 세월호의 출항을 동의했을까.
제2 세월호는 반드시 막아야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세월호의 아이들과 승객들을 살릴 수 있을까. 구조 신호가 처음 접수된 16일 오전 8시48분으로 시간을 돌린다면 단원고 아이들과 승객들을 구출할 수 있을까. 구조 초기 허둥대는 해경이나 속수무책으로 가라앉는 배를 바라만 봤던 정부의 재난대응 시스템을 되짚어보면 답은 부정적이다.
지금도 승객과 화물을 잔뜩 싣고 기우뚱거리면서 연안을 돌아다니고 있을 배가 한두 척이 아닐지 모른다. 선박 안전관리가 이렇게 낙후된 구조에서는 ‘제2의 세월호 침몰 사고’가 생기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전석운 사회부장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