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8시간 노동

입력 2014-05-01 02:39

1886년 5월 1일 출범 5년째를 맞은 미국노동총연맹은 하루 8시간 노동제가 거부되고 있는 곳들에서 전국적 총파업을 선언했다. 1만1500여 곳에서 약 35만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했다. 시카고에서 5월 3일 경찰이 노동자들에게 발포했고, 4명이 숨졌다. 다음 날 헤이마켓 광장에서는 4000여명이 참석한 항의집회가 열렸다. 경찰이 강제해산 명령을 내린 순간 누군가가 던진 폭탄이 터져 경찰관 7명이 숨지고 59명이 다쳤다. 경찰도 총격을 가해 여러 명이 죽고 200여명이 다쳤다.

유력한 용의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대부분 헤이마켓 집회와는 무관한 노동운동 지도자 8명이 살인조장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이들 중 4명은 교수형에 처해졌고, 한 명은 감옥에서 자살, 3명은 사면됐다. 18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은 미국의 8시간 노동제 투쟁을 기리기 위해 5월 1일을 ‘메이데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서는 노동절이 5월 1일이 아니라 9월 첫 월요일이다. 미국 정부는 노동자들이 불온한 시위 등을 벌인 날이라는 이유로 메이데이를 공휴일로 지정하기를 거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동절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대한노총이 메이데이 기념식을 열었지만, 일종의 관제 행사에 그쳤다. 1957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3월 10일 대한노총 창립일이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지정되면서 메이데이는 사회주의 국가의 경축일이라는 이유로 금기시됐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조합은 메이데이를 다시 노동절로 지정하도록 요구했고, 1994년 국회는 근로자의 날을 3월 10일에서 5월 1일로 옮기도록 법률을 개정했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고 한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도 대부분의 선진국들처럼 현재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원칙은 온갖 예외들로 인해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사용자는 연장근로 한도 12시간과 ‘연장근로에 해당되지 않는다’(노동부 지침)는 휴일근로 16시간을 합쳐 주당 68시간의 근로를 시킬 수 있다.

그 결과 한국 근로자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오랜 시간 일한다. 노동부의 터무니없는 휴일근로 지침을 대체할 법 개정을 논의했던 국회 환경노동위 노사정소위원회는 지난달 23일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활동을 종료했다. 우리나라 대부분 노동자에게 8시간 노동은 아직도 요원한 꿈이다. 노동절의 본질은 사라지고, 깃발만 나부낀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