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이인실] 관피아를 만든 빨대경제구조
입력 2014-05-01 02:40
“세월호 사고 발생은 정치권력자와 이해관계자의 결탁이 계속 유지됐기 때문”
오랜만에 외국에 사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대뜸 아직도 세월호 안에 갇혀 물속에 있는 아이들 이야기부터 꺼낸다. 크고 작은 안타까운 사고들이 안 터진 해가 없었지만 이번 사고는 어린 학생들의 희생으로 인해 온 국민을 트라우마에 빠뜨렸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후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다. 그런데도 무리한 운행과 선장의 자질 부족, 무책임한 승객안전조치, 당국의 형식적인 관리감독에 망가진 해난구조체제에 이르기까지 그때의 어처구니없는 사고원인과 대처체계에서 한 발짝도 개선되지 못했다는 데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언론들은 모두 나서서 복지부동과 보신으로 얼룩진 관료주의의 고질적 병폐에 화살을 돌리면서 ‘관피아(관료+마피아)’ 문화와 낙하산 인사를 척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통령도 나서서 관피아의 관행을 끊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과연 이런 문제가 관피아를 척결한다고 해결될 것인가 의문이다.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데 평소에 가만히 있다가 문제만 터지면 법석을 떨어대는 국가 전체의 시스템 문제는 아닌가.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역사에서 다시 쓰기 어렵다 할 정도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서구처럼 시장경쟁에 의한 국가 운영이 아니라 정부 주도 하에 개발계획을 세우고 민간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나서서 각종 보호 육성책을 만들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행정력 배분을 해왔다. 그 결과 어떤 방법으로 누구에게 나누어 주는가에 따라 떡고물이 생기게 되었다. 행정권력을 가진 자가 다양한 권력을 각종 협회니 단체니 투자기관이니 하는 다양한 종류의 준공공기관을 만들어 나누어 주고 이들 기관을 통해 독점적 업무영역과 관련한 소속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보장해서 생긴 지대를 빨아먹는 빨대경제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이런 빨대경제구조가 효율적으로 작동해 오늘날의 성장신화를 만드는 데 기여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끼리끼리 문화를 만들어내면서 사회부조리로 변질되어 갔다. 이번 세월호 사고는 해양수산부의 빨대경제구조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사고다.
그동안 여러 번의 사건·사고와 위기가 있어 왔지만 개선되지 못하고 세월호 사고가 또 발생하게 된 것은 정치권력자와 경제적 지대를 추구하는 이해관계자의 결탁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치·경제적 담합구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교묘해지고 공고화되고 있다.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며 어느 부처 출신이 어느 기관의 무슨 자리로 갔다고 알려지는 것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알게 모르게 정부와 정치권 등 정치권력자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준공공자리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 더 문제다.
더욱이 관피아 기관들이 정부조직법상의 행정기관은 아니면서 공공목적을 수행하는 다양한 기관들을 장악하고 있기조차 하다. 직접적인 정부예산을 쓰는 것은 아니어서 감사원이나 국회의 감시를 받는 데서 벗어나 있다. 대부분이 근거법에 기인하며 민법이나 상법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주무부처별로 ‘○○기본법’이 만들어지고 여기에 파생된 법이 만들어져 산하 실행기관을 만들게 된다. 법에 의한 기관은 눈에 보이지만 정관이나 규정에 의해 생성된 기관은 신도 모르는 기관이다. 정부업무가 복잡해질수록 신도 모르는 기관은 급속도로 늘어난다.
역대정권이 해결방법을 여러 가지로 시도했지만 실패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해피아가 문제를 일으켰지만 비슷한 종류의 사건·사고 가능성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다. 우선은 전체적인 국가 재난안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쇄신하는 일이 급선무지만 빨대경제구조를 인센티브구조로 바꾸는 근본적인 해결방안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가 미래를 위해 무능률과 부패의 문제가 있는 빨대경제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