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북한핵 억제력 강화해야
입력 2014-05-01 02:41
역사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 미국 예일대 교수는 1990년대 말 냉전이 종식됐을 때 “인류는 냉전시기를 그리워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우려한 것은 냉전시기에 유지됐던 ‘오랜 평화’ 역시 종말을 고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디스는 저서 ‘긴 평화(The long peace)’에서 냉전 40여년간 세계적인 전쟁이 없었던 것은 핵무기에 의한 ‘공포의 균형’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회주의 진영과 민주주의 진영을 이끌었던 미국과 구 소련은 ‘절대무기’로 분류되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핵무기의 위력을 알고 있는 두 강대국은 핵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던 위기를 전쟁으로 비화시키지 않았다. 개디스는 ‘공포의 무기’ 핵무기가 전쟁을 억제했다고 해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이다. 당시 미국의 앞마당인 카리브해에 있는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던 소련과 이를 막으려는 미국의 갈등은 양국 관계를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치달았으나 막판에 극적인 타협이 이뤄졌다. 핵무기의 재앙을 잘 알고 있어서다. 개디스는 핵무기는 보유할 수는 있어도 사용할 수는 없는 무기로 보고 있다. 개디스의 주장에 동의하는 학자나 관료들이 적지 않다.
핵무기는 개발된 뒤 두 차례 사용됐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와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두 도시는 당시 일본의 전쟁수행능력을 지탱해온 중요한 곳들이었다. 히로시마에는 육군의 주요 군수저장시설이 있었고 나가사키는 해군과 군수산업의 중심지로 전쟁수행을 지원하는 병참기지였다. 미국 원자폭탄 프로그램의 최고책임자였던 헨리 스팀슨은 1947년 ‘하퍼스 매거진’에서 쓴 기사에서 “일본 지배세력에게 충격을 가함으로써 우리가 바라던 결과를 정확하게 얻을 수 있는 혁명적인 무기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5개월간에 걸친 미군의 대규모 공습에도 끈질기게 버텨왔던 일본은 결국 항복했다. 두 발의 폭탄이 남긴 엄청난 피해는 핵무기 확산을 막지 못했지만 다시는 이 무서운 무기가 사용되면 안 된다는 교훈은 명확히 남겼다. 미국은 6·25전쟁과 베트남전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핵무기 사용의 유혹을 떨쳐냈다. 영국도 포클랜드전쟁 때 어려움이 있었지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지 않았다. 비공식적인 핵보유국인 이스라엘도 제4차 중동전에서 위기에 몰렸지만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국가가 이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 스코트 세이건 교수는 한 세미나에서 “불량국가들, 즉 핵무기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개화된 지도자가 없는 비문명사회 같은 곳에서는 핵무기를 사용하려는 무모한 욕망을 실천에 옮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이건 교수가 분류한 불량국가에는 북한도 포함돼 있다. 로버트 케네디 미국 법무장관은 쿠바 미사일위기가 종료된 지 5년이 지난 1968년 자신의 대통령선거운동용 책자에서 “이성적인 존재인 인간이 그 파괴력을 알고 있어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무모하고 무지한 짓일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지극히 이성적이었던 케네디마저 이런 유혹에 흔들렸다면 젊은 북한 지도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어떨까. 북한이 핵무기보유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단계가 될 수 있는 4차 핵실험에 대해 국제사회의 우려가 큰 이유이기도 하다.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다. 주변의 기대를 항상 저버렸던 북한지도부에 희망을 거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대신 북한 핵무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공포의 균형’ 전략을 확고히 마련해야 한다. 국제적인 경제제재방안을 더 촘촘히 해야 하고 군사적으로는 북한의 핵 및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비한 맞춤형 전략을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이런 방안들이 북한에게 공포를 주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북한에게 핵무기를 만들더라도 결코 쓸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는 보다 창의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