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아이들의 분노] “마구 묻고 사진 찍고… 가뜩이나 힘든데 그만 괴롭히세요”
입력 2014-04-30 04:56
언론·대통령에 보내는 단원고 학생들의 항의 편지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2주 지났습니다. 그 사이 무수히 많은 언론보도가 쏟아졌습니다. 이 와중에 과도한 속보 경쟁과 부주의한 취재 태도가 생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주었습니다. 준비한 변명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산의 단원고 아이들이 "꼭 언론에 보도될 수 있게 해 달라"며 전달한 두 장의 항의편지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언론은 또 다른 가해자였습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선장 한 명이 어떤 참사를 만들어냈는지,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닥칠 일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 목격했습니다. 온 국민이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그걸 깨달은 참입니다. 언론에는 언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을 겁니다. 그걸 뒤섞어 다들 고통스럽게 돼버렸다는 걸 아이들이 아프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이 아이들에게 반성의 답장을 보낼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요. 지금은 그저 아이들이 원한 대로 그들의 성난 목소리를 독자에게 보냅니다. 더불어 대통령과 정부에 보낸 편지도 공개합니다. 이 편지들은 상담 책임자로 현재 단원고에 상주하고 있는 정운선(경북대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교육부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장이 전달했습니다. 아이들이 "꼭 보도해 달라"고 직접 요청한 글이라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전문을 그대로 싣되 실명이 등장하는 부분은 익명 처리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문장부호를 첨가했습니다.
①불안에 떠는 학생들에게 카메라 들이밀고
저번에 ○○○ 선생님이 돌아가셨다고 뉴스에서 돌고 있을 때 우린 학교를 갔습니다. ○○이는 ○반 아이들이 걱정되어서 제가 오기 전에 칠판에다가 ‘얘들아 무사히 살아서 돌아와’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딱 한 줄 남았을 때 ○○이는 쓰기 싫어져서 안 썼는데 “학생 미안한데 한 줄만 더 써 줘”라고 하고 갑자기 사진 찍고. 그리고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는데 제가 어떤 기자에게 “그걸 꼭 찍어야 되느냐”고 그랬지만 “분명히 찍어야 되니까 찍는 거겠지?”라고 하시는데 진짜 어이도 없고 화도 나고. ○○이를 지켜주지 못한 점에서 저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저희 편지도 훔쳐가고 계속 쫓아와서 물어보고 저희 친구 오빠라고 거짓말하고 저희한테 그 친구 오빠라면서 정보 달라 그러고. 진짜 하다하다 속이면서까지 그렇게 병원 들어오고. 그리고 제가 단원고 교복을 입고 학교 온 적 있는데 “몇 학년이냐”고 그러고. 그리고 저희는 힘든데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카메라와 기자들이 몰려드는데, 저희는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모르겠고.
그리고 ○○○ ○○○ ○○○ 학생들의 장례식장 앞을 가∼득 채운 기자들이 너무 한심하고, 이게 진짜 우리나라인가 싶고. 거짓말만 하고 저희 편지까지 그리고 얼굴 이름 나이 성별 학력 이런 거나 공개하질 않나. 진짜 때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반 ○명 구조됐는데 그 상처와 죄책감과 놀란 것을 진정시키고 있고 불안에 떠는 그 학생들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밀고 정신이 나간 건 줄 알았습니다. 아직 18살 학생들인데…. 정말 너무하고 제가 괜히 미안해지고 부끄러웠습니다. 어른들이 그러는 게.
②힘들어서 울 때 그걸 찍어 뉴스에 내보내야겠어요?
가뜩이나 힘든 애들한테 그만 물어보시고 사진 그만 찍으세요. 제가 힘들어서 울 때 그걸 찍고 그걸 뉴스에 내보내시면 좋으세요? 그리고 “몇 학년이냐”고 물어보신 분, 제가 몇 학년이면 어쩌시려고요? 2학년이면 잡아서 인터뷰라도 하시려고요? 직업이신 건 알겠는데 적당히 좀 하세요. 가뜩이나 힘든 학생들 그만 괴롭히세요. 그곳에 기자님들 자식이 있어도 그러시겠어요? 한번만 더 그러시면 카메라 부숴버릴 거예요.
③대통령님의 자식이라고 생각하시고 구해주세요
제발 아직 생사 여부도 모르는 아이들 좀 빨리 구해주세요. 저도 지금 바다 안에 있는 애들이 걱정되고 고통스러운데, 바다 안에 있는 애들이랑 부모님들은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제발 하루빨리 구해주세요. 벌써 열흘이 넘었어요. 대통령님의 자식이라고 생각하시고 빨리 구해주세요.
④분향소 설치에 드는 돈, 아이들 구조에 써주세요
매일 아침 또는 하교 때마다 보고 싶을 때나 인사하고 싶을 때마다 (사망한 친구들을 분향소에서) 보고 싶어요. 그리고 옮기고 설치할 때마다 돈이 굉장히 많이 들 텐데 저희 부모님들이 힘들게 낸 세금, 이 세금으로 아직 생사 확인도 안 된 아이들 구조에 더 써주세요.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