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기획] 국민들 ‘세월호 트라우마’… 가벼운 우울증도 의사와 상담을

입력 2014-04-30 02:07


“혹시 내게도 불행이…” 정신과 진료 수요 급증

세월호 참사는 피해자뿐 아니라 온 국민에게 심리적 외상을 입혔다. 사고 이후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져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수요도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정신과의 문턱은 높다. 치료비가 비싸고 ‘정신병력 낙인’이 남는다는 편견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비싸고 불안해” 여전한 편견=직장인 정모(26)씨는 최근 불면증이 심해졌다. 세월호 사고 관련 뉴스를 매일 보다 보니 “내게도 언제 불행이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울감도 지속됐다.

정씨는 29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찾아 증상을 설명했다. 의사는 임상심리검사를 권했다. 심리검사 비용은 30만원. 여기에 ‘비보험’으로 전문의 상담을 받으면 약 8만원이 더해진다고 했다. 생각보다 비싼 진료비에 냅다 겁을 먹은 그는 결국 발길을 돌렸다.

정신과에서는 환자의 명확한 심리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진료 전 심리검사를 실시한다. 평소 생활 습관이나 기분, 인지능력 등을 점검하는 이 검사의 비용은 병원별로 적게는 20만원에서 많게는 50만원에 달한다. 실제 사고나 성폭력·가정폭력 등의 피해자인 경우 각종 지원 기관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보통 환자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환자가 정신과 치료 이력이 남는 것을 우려해 보험 청구를 하지 않고 상담을 받는다. 이 경우 상담비용은 시간당 1만∼10만원 선이다. “말로 하는 상담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며 정신과를 무턱대고 불신하는 경우도 많다.

◇조기 치료가 중요…“상담으로 충분”=전문가들은 “경도 우울증(증상이 심하지 않은 우울증)의 경우 심리검사나 약물을 동반하지 않은 치료법도 있으니 일단 전문의 상담을 받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초기 우울증을 방치할 경우 갈수록 자신도 모르는 새 심한 우울감과 자괴감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정신과 상담은 ‘의사가 막연히 얘기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많다. 그러나 상담은 여러 의학적 연구 결과로 입증된 효율적인 치료방법이다.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은 개인이 갖고 있는 인지구조, 즉 생각이나 행동 방식 가운데 우울증에 취약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며 “정신과 상담은 단순히 환자를 위로하는 게 아니라 이 요소들을 찾아내 긍정적으로 바꿔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인을 근본적으로 분석·치료하기 때문에 순간적인 우울감을 완화시켜주는 약물보다 장기적으로는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에게 심리상담을 실시하고 있는 하정미 부산장신대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는 “우울증의 원인은 대개 자신과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라며 “전문가들은 환자와의 대화나 환자의 행동에서 이러한 부분을 끄집어내 교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덧붙였다.

비싼 임상심리검사 역시 필수 항목은 아니다. 김 교수는 “증상별로 부분 검사만 실시하거나 아예 검사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정신과 진료는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로 진행되니 미리 걱정하고 병원을 꺼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정신과 진료는 무조건 ‘비보험’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편견도 오해다. 단순 상담 치료는 건강보험 정신과 분류코드인 ‘F’ 코드가 아닌 ‘Z’ 코드로 기록돼 추후 보험 가입 등에도 지장이 없고 진료 시에도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래도 병원 문을 두드리는 게 꺼려진다면 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찾는 것도 좋다. 각 지자체는 관내에 정신건강 상담을 지원하고 전문의와의 연계를 돕는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누구나 전화 또는 방문 상담을 받을 수 있고, 상담료는 대부분 무료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