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제작업자 비화 공개… “김정일 밀랍상에 검버섯 넣느냐 마느냐로 北과 논쟁”
입력 2014-04-30 03:00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밀랍상은 신(God)처럼 떠받들어져요. 밀랍인형일 뿐인데 만지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북한 최고 지도자들의 밀랍상을 만들어 온 장모레이 중국 위인납상관(偉人蠟像館·밀랍인형관) 관장이 2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제작 비화를 털어놨다.
그가 처음 북한 지도자의 밀랍상을 만든 건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4년이었다. 당시 주중 북한대사가 장 관장을 찾아와 밀랍상 제작을 의뢰했다. 2년 뒤 검은 양복에 흰 장갑을 낀 보디가드들이 와서 밀랍상을 평양으로 가져갔다. 다음엔 북한 고위 당국자가 낡은 사진 몇 장을 갖고 찾아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모인 김정숙 밀랍상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장 관장은 “사진이 워낙 흐릿해 만드는 데 애먹었다”며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자 북한이 이 밀랍상을 딱 한번 외부에 전시했다”고 말했다.
장 관장은 검버섯 때문에 김정일의 밀랍상 제작이 무산될 뻔한 일화도 있다고 전했다. 북한 고위 당국자들의 요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디테일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정일이 사망할 당시 얼굴엔 검버섯이 많은 편이었는데 북 당국자들은 밀랍상에 검버섯이 한 개라도 있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 관장은 검버섯을 줄일 수는 있어도 아예 없게 만들 수 없다고 맞섰다. 합의점을 찾지 못해 제작이 힘들 뻔했는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검버섯을 조금 남겨놓자”고 장 관장의 손을 들어주며 가까스로 제작이 진행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김정일 밀랍상은 이달 초 평안북도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에서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최근 장 관장도 그간 공로를 인정받아 북한이 예술인에게 주는 최고 영예인 ‘인민예술가’ 칭호를 외국인으로서 처음 받았다.
덩샤오핑, 윈스턴 처칠 등 각국 지도자들의 밀랍상도 제작한 그는 실제 인물의 키보다 밀랍상을 더 크게 만든다. 김일성도 실제 키는 173㎝인데 밀랍상은 189㎝다. 장 관장은 “관람객들은 일정 거리를 두고 밀랍상을 보기 때문에 조금 크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