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낙태·단종’ 당한 한센인에 첫 국가 배상 판결

입력 2014-04-30 02:44

강제로 낙태·단종(斷種)을 당한 한센인들에게 처음으로 국가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한센인에 대한 국가의 반인륜적 인권침해를 인정한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민사2부(부장판사 유영근)는 29일 한센인으로 낙태·단종을 당한 원고 19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관절제 수술을 받은 강모씨 등 9명에 대해 각 3000만원,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김모씨 등 10명에 대해 각 4000만원 배상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가 한센인 강제격리 정책을 1970년대까지 유지하면서 정관절제와 임신중절에 내세운 조건들이 원고로서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판단한다”며 “국가의 행위는 위법함을 면할 수 없어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고 밝혔다. 또 “한센인들은 소록도병원에서 일시적 치료가 아니라 인생의 상당기간을 지내야 하는 입장이었다”며 “원고들이 죄를 짓거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합리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전면적인 출산금지 정책을 편 것은 명백히 잘못된 반인륜적 반인권적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단종 한센인 9명과 낙태 한센인 10명 등 이번 소송의 원고들은 과거 국립 소록도병원과 익산·안동·부산·칠곡 등의 시설에서 단종과 낙태를 당했다.

한센인권변호단에 따르면 한센병 회복자들에 대한 인권침해는 일제강점기부터 단종·낙태 외에도 강제격리, 한국전쟁 당시 집단학살, 강제노동, 폭행·감금에 이어 교육과 취업의 차별 등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판결은 단종·낙태를 당한 또 다른 한센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서울 중앙지법에 제기한 3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순천=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