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BBC “재난 보도, 속보보다 정확성 우선”… 한국 언론 행태 질책

입력 2014-04-30 02:27

2012년 8월 종영된 ‘뉴스룸 시즌1’은 방송사 보도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미국 드라마다. 여기엔 한 정치인이 총격을 받아 병원으로 이송된 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이 소개된다. 언론사들은 모든 정규방송을 중단한 채 이 소식을 전했다. 이 과정에서 공영 라디오(NPR)가 해당 정치인의 사망 소식을 속보로 냈다. 이어 CNN, FOX 등 다른 방송사가 곧바로 이 같은 소식을 앞 다퉈 보도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상의 케이블채널 ACN의 뉴스 제작자들은 사망 소식을 전하기를 거부했다. 정보의 출처가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사장이 편집국으로 뛰어 들어와 “속보 경쟁에서 뒤지면 1초에 1000명이 채널을 돌린다”고 따졌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한 프로듀서는 “사람 목숨은 뉴스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의사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이 정치인의 사망 소식은 오보로 판별 났다.

허핑턴포스트는 지난 17일 세월호 사건을 보도하며 이 같은 뉴스룸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한국 언론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관련 보도를 쏟아낸 것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16일 오전 세월호 침몰 당시 국내 언론은 이런 사실을 속보로 쏟아냈다. 얼마 후 모든 탑승자가 구출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불과 20여분 뒤 언론들은 이 보도가 오보임을 밝히며 구조자 수를 수정해서 전달했다. 사건 초기 경기도교육청 등에서 전한 미확인 자료를 그대로 받아쓴 것이다. 이후에도 정부가 탑승자와 구조자 수를 수정해 발표하면서 언론도 늘렸다 줄였다를 여러 번 반복했다.

허핑턴포스트는 이 오보 사태를 정부에서 제공한 데이터의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부터 시작된 언론의 보도 레이스가 팩트의 검증 없이 계속됐다는 것이다. 정확한 보도보다 빠른 보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허핑턴포스트는 ‘진도가 언론사 간 보도 경쟁의 전쟁터가 됐다’고 비난했다.

외신도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때 속보성을 강조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신뢰받는 언론일수록 정확하게 보도하려는 원칙을 지키려 애쓴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뉴욕 맨해튼에서 아파트 붕괴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사고 발생 1시간45분이 지나 첫 보도를 했다. 다른 언론들은 촌각을 다투는 속보 경쟁에 뛰어들어 시시각각 기사를 쏟아냈지만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웠던 NYT는 달랐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로 빨리 기사를 쓰기보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해 오보를 줄인다는 원칙 때문이다.

영국 공영방송 BBC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2005년 런던에서 지하철 테러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BBC는 다른 언론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련 소식을 늦게 전달했다. 사실 확인을 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BBC의 제작 가이드라인에는 “정확성에 대한 약속은 BBC의 명성과 시청자의 신뢰에 근본적이며 그것이 BBC의 기반”이라고 적혀 있다.

이용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