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입력 2014-04-30 02:43

1948년 10월 여순반란 사건 때 손양원 목사는 좌익 폭도에 의해 25세와 19세 된 두 아들 동인, 동신이를 잃었다. 당시 여중생이던 동희씨는 두 오빠의 시신 앞에서 “하나님은 그때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라고 절규했지만 손 목사는 장례식장에서 하나님께 9가지 감사 기도를 드렸다.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을 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허다한 많은 성도 가운데 어찌 이런 보배를 하필 나에게 맡겨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한 아들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순교했으니 감사합니다.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두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중략).”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을 참척(慘慽)이라고 한다. 시력을 잃어 맹인이 된다는 상명(喪明)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아들이 죽자 너무나 상심해 밤낮을 울다가 실명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자식 잃은 것보다 더한 고통은 없다. 인간인지라 세상의 피붙이 인연에 매이고 그 연이 끊어졌을 때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을 느끼게 된다. 죽음이 끝이 아니며 천국을 소망으로 품고 사는 크리스천들도 순간순간 절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물며 신의 사람인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거친 파도와 바람에 직면한 순간, 신이 주무시는 게 아닌가 싶었다”고 인간적인 회의를 드러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생때같은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도 원망이 가득할 것이다. 수백명의 꽃다운 아이들이 시커먼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데도 신은 왜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빠졌을 때처럼 손을 내밀어 구해주시지 않았는가.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 돌아온 요나의 기적을 왜 보여주시지 않나.

이번 사고로 단원고생 아들을 잃었지만 슬픔을 감사로 승화시킨 안산동부교회 김영삼 장로의 기도문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그는 페이스북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회개하고 나온 것처럼 돌아와도 감사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정민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받은 것에 감사합니다”라고 썼다.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다니엘 3:17∼18).” 죽음에 맞섰던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숭고한 믿음에 숙연해진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