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병권] 한국형 관료제 이제 손볼 때 됐다

입력 2014-04-30 02:43


“예의와 염치를 갖춘 인재가 공무를 담당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

나라 전체로 보면 세월호 참사의 유일한 이득은 대한민국 관료사회가 무능과 부패의 정점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새삼 실감했다는 점이다. 각종 마피아 시리즈로 머리가 혼란스러울 정도다. 모든 논의는 결국 국가를 전면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는 담론으로 귀착되는 느낌이다.

씨족사회와 부족사회를 거쳐 소위 국가로 불릴 만한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할 때부터 나라 운영을 두고 현자들이 갑론을박했지만 아직 정답은 찾지 못했다. 다만 역사적으로 권력의 소유 형태만 고찰하자면 대개 서양은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로, 동양은 세습군주에 의한 지배로 나타났다. 이 결과 서세동점의 파고를 거쳐 합리주의로 무장한 서구사회가 아시아 제국을 휩쓸지 않았던가.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 논의 중인 국가개조라는 거대 담론이 작게는 국민 의식개혁 운동부터 크게는 헌법개정까지 백화제방(百花齊放)식으로 말의 성찬만 벌이다 아무것도 못하고 사그라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안타깝게 스러져간 어린 학생들에게 면목 없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지금 얘기되고 있는 국가개조는 공무원 바로세우기에 모아져야 한다. 곳곳에 마련된 분향소에 모여든 착한 백성들과 성금을 낸 갑남을녀의 마음씨 등을 생각하면 우리 국민들은 아무 죄가 없다. 국민의식 개혁 운운하며 자학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등 각종 자격시험과 공무원 임용시험의 합격이 출세를 보장하는 증명서가 되는 제도를 구태여 탓하고 싶진 않다. 젊은 시절 하나의 목표가 될 수 있으며 적수공권의 무직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요즘엔 로스쿨 진학에도 얼마간 돈은 있어야 하고, 직업 없이 장기간 공무원 시험 준비하려면 생계에 지장도 없어야 한다. 문제는 바로 썩어빠진 관료사회 아니겠는가.

생각해보면 직업 관료주의는 근대 행정국가 출범 이래 국가융성의 중요한 버팀목이었다. 오늘날 선진국 치고 훈련된 관료집단의 도움 없이 나라다운 나라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가 있던가. 우리나라도 동남아 여러 국가에 비하면 우수한 관료의 혜택을 본 축에 든다. 그러나 이제는 한계점에 왔다.

관료제의 병리 현상으로 흔히 지적되는 비능률성, 형식주의, 무사안일주의, 비밀주의, 할거주의, 번문욕례, 훈련된 무능력, 끊임없이 영역 확장을 꾀하는 습성 등이 이번에 낱낱이 맨 얼굴을 드러냈다. 요즘의 공무원들은 과거 자신의 선배들이 조금이나마 갖고 있었던 애국심마저 없는 듯하다. 보도매체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요즘에도 공무원 미담사례가 한강백사장에서 바늘 찾기 만큼 어려워진 것이 단적으로 증명한다. 공무원 100만명 시대의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근대 관료제를 구상한 막스 베버(Max Weber)의 이념형 모형은 원래 이렇지 않았다. 조직을 지배하는 정당성을 기준으로 권위의 유형을 구분한 뒤 합법적 권위가 반영된 조직을 관료제라고 정의했다. 말하자면 제도화된 질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권력이 보장된 지위’를 차지한 것이 관료라는 의미일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매우 이상적인 형태로 그 의미는 작지 않다.

행정의 연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데다 정권의 부침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직업 관료제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는 이제 손볼 때가 됐다. 인사행정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공직자 임용 방안의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민간 전문가집단이 공직사회를 압도한 것이 오래전의 일인데 아직까지 바뀌지 않고 있는 것도 밥그릇 빼앗기지 않으려는 관료들의 몸부림 때문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왕조시대의 공무원 격인 목민(牧民)이란 말을 처음 만든 관중의 책에 이런 말이 있다. 국가 유지에 필요한 네 가지 수칙은 예(禮)와 의(義) 그리고 염(廉)과 치(恥)인데 이것이 없으면 나라가 멸망한다고. 우리 공직자 가운데 이 중 하나라도 제대로 갖춘 사람이 있었다면 진도 앞 바다의 참극은 없었을 것이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