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한국, 세월호의 나라
입력 2014-04-30 02:59
지난 25일 베이징시내 한 대학교 강의실. 외국인을 위한 중국어 수업시간에 세월호 참사를 놓고 자유 토론이 벌어졌다.
“왜 대다수 학생들이 수장(水葬)돼야 했는지…. 한국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10대 자녀 두 명을 둔 미국 여성은 후진국도 아닌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상상 밖이라고 했다.
여객기 조종사가 남편인 튀니지 여성은 “항공기는 추락하면 손 쓸 틈이 없지만 선박은 초기 대응만 잘하면 생존자가 훨씬 많아질 수 있는데”라면서 한국인 친구를 바라봤다. 수업에 참가했던 한국인 지인은 “그 때문에 한국사회 전체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당시 분위기를 전하면서 “너무나 부끄러웠다”고 토로했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중국 언론의 관심도 대단하다. 국영 CCTV는 거의 실시간으로 관련 소식을 전한다.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유력지 신경보(新京報)는 정홍원 총리가 물병에 맞는 모습도, 사퇴를 밝히는 장면도 1면 거의 전체를 차지하는 사진으로 썼다.
중국 언론 보도에는 대체적으로 “한국이 아직 선진국은 아니군”이라는 게 깔려 있다. 더욱이 중국 정부는 5월 1일부터 3일까지 계속되는 노동절 휴가를 앞두고 선박사고 방지 긴급 대책을 발표하면서 “세월호 침몰 사고의 교훈을 잊지 마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중국인들은 삼성의 휴대전화, 현대의 자동차에다 TV 드라마로 대표되는 한류(韓流)를 접하면서 한국을 매력적인 나라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여 온 게 사실이다.
친한 중국 교수는 참사 발생 이튿날인 17일 웨이신(微信·중국판 카카오톡)을 보내왔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별일 없느냐. 여객선 참사를 보면서 특별한 위로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고맙게 받아들이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지난 토요일(26일)에는 아내와 함께 왕징(望京)에 위치한 베이징 한국인회 사무국에 마련된 분향소를 다녀왔다. 입구 쪽 항아리에 담겨 있는 노란색 리본을 상의 깃에 달 때는 저절로 숙연해졌다. 분향소를 나선 뒤 아내는 말했다. 이번 사고처럼 ‘부끄러운 자화상’을 또 대면하게 될지 겁이 난다고.
앞서 중국 3대 정치세력 중 하나인 공청단의 베이징시위원회 기관지 베이징청년보는 기자에게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국인으로서 세월호 참사를 보는 시각을 담은 글을 써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한국의 현주소에 자괴감을 느낀다”면서 작년 이맘때 쓰촨(四川)성 야안(雅安) 지진 현장에서 취재했던 경험을 21일자 기고문에 담았다.
중국 정부와 언론, 인민해방군, 자원봉사자 등이 초대형 재난 앞에서 힘을 합해 새로 일어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썼다.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 국민은 지금 동일본 대지진이나 야안 지진 때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겪었던 것 못지않은 집단 내상(內傷)을 앓고 있는 듯하다. 피해만 놓고 보자면 두 지진에 비할 바 아니지만 정신적 고통은 그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지진은 자연재해였던 데 비해 세월호 침몰과 그 뒤 상황은 인간의 잘못을 속속들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할 수 없었던 일이 아니라 뻔히 알고도 당했다는 사실이 괴로운 것이다.
이번 사건은 참으로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번에 추락된 국가 이미지도 엄청나다는 사실이다. 국가 이미지 재구축은 대한민국을 ‘세월호 전과 후’로 나눌 정도로 국가 개조 작업에 착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