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홍하상] 중국의 상도가 부활했다
입력 2014-04-30 02:58
중국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된 반찬가게는 장아찌로 유명한 리우베쥐(六必居)이다. 명나라 때인 1530년에 창업했으니 5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주점과 반찬가게를 겸업했다는 리우베쥐는 상품을 만들 때 반드시 지켜야 할 6가지 원칙을 정해놓아 가게 이름도 육필거(六必居)이다.
그 6가지란 술을 담그기 위한 곡물과 누룩은 각각 반드시 최상급을 써야 하고, 그릇은 깨끗해야 하고, 그릇이나 술병은 아름다워야 하며, 재료를 아끼지 말고, 샘물은 반드시 맑은 것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6가지 원칙에 충실하다 보니 가게는 번창해 1960년대까지 잘 흘러왔다. 그러나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자본주의자들을 비판하자 이 가게도 그만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기업가 정신에 눈 뜨기 시작해
1972년 9월 일본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중·일 수교를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 다나카 총리는 저우언라이 중국공산당 총리와 마오타이주로 건배를 하면서 “혹시 아직도 리우베쥐가 영업을 하고 있는지요”라고 물으며 직접 만년필로 ‘六必居’라고 써보였다.
저우언라이가 화들짝 놀라 물으니 다나카 총리는 젊은 날 중국과 무역을 했는데 리우베쥐의 장아찌를 아주 좋아했다는 것이다. 저우언라이는 리우베쥐의 영업을 재개시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고, 가게는 다시 문을 열었다.
3년 전 중국 상무부는 중국 대륙 전체에 70년 이상 된 가게를 조사했다. 그리고 1600개의 가게가 지금도 영업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 가게들을 오래된 가게라는 뜻의 라오쯔하오(老子號)로 지정해서 간판을 달게 했다. 그런 가게에 가면 보란 듯 정부에서 내려준 ‘중국의 문물중점 보호단위’라는 동판이 척 붙어 있다.
작년 내내 라오쯔하오 1600개의 명단을 가지고 베이징 톈진 상하이 항저우 쑤저우 광저우 선전 난징 우시 양저우 등을 돌아다녔다. 현지에서 취재를 해보니 1600개 명단에 없는 가게도 부지기수였다.
2500년 역사를 가진 황주가게가 샤오싱에 있는가 하면 ‘살아서는 항저우, 죽어서는 류저우의 관’이라는 말대로 3000년 역사를 가진 관 가게도 있었다. 한국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베이징의 첸먼따제에 있는 쮜엔쮜더의 베이징 오리구이보다 훨씬 앞선 1416년에 창업한 베니팡이라는 오리구이 가게가 압도적인 맛으로 성업 중이었다. 또한 건륭제에게 황제요리를 공급하던 만한전석의 원조 팡좐(彷膳)이 북해공원 안에서 880가지의 요리를 팔고 있었다.
얼마 전 중국의 유력 포털 사이트이자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창업주 마윈이 중국 상도의 부활을 외치며 쑤저우에 ‘강남회’라는 구락부를 열었다. 왕이망의 딩레이를 비롯, 중국의 대기업가 30여명이 이에 동참,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그들의 스승은 청나라 말기의 거상 호설암이다.
국내총생산 규모 세계 1위 눈앞
그것뿐이 아니다. 상하이의 와이탄에도 기업가들 모임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중국의 상인, 기업가들은 돈을 버는 일에 주력해 왔지만 이제 바야흐로 돈보다 더 중요한 상도, 기업가 정신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돈을 쓸 때는 모든 사람이 기뻐할 수 있도록 쓴다’ ‘거미줄도 모이면 사자도 잡을 수 있다’ ‘돈의 향기는 천리를 간다’ 등등. 중국 상인의 격언이다.
이제 바야흐로 중국 상인의 아버지인 호설암이 부활하는가. 강력한 경제성장률에 상도정신까지 합쳐지면 중국이 아시아의 맹주, 더 나아가 2020년에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위 국가가 되는 것은 명확하다.
홍하상(논픽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