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단독] 배 실측도 안하고… 최대승선인원 멋대로 산정해 과적유발
입력 2014-04-29 05:01
선박공단 내부 감사보고서에 나타난 실태
국내 중·소형 선박의 안전 검사를 담당하는 선박안전기술공단(선박공단)은 그야말로 ‘부실 집합소’였다. 그들이 직접 작성한 내부 감사보고서에는 개별 직원의 도덕적 해이 행태부터 안전불감증까지 숱한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엉망진창 일 처리=28일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불합격’ 선박이 바다를 떠다닌 건 비단 인천지부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제주지부는 2012년 11월 20일 27t 선박 대성호를 불합격 처리했다. 그러나 정작 이 선박을 관리해야 하는 제주도청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제주지부가 불합격 사실을 제때 알리지 않은 탓이다.
관할 지역에서 해양 사고가 났는데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 현행 ‘해양사고 예방·조치 절차서’에 따르면 바다 위에서 배가 부딪히거나 침몰하는 등 사고가 터지면 내용·원인·유형 및 피해 사항 일체를 파악해 ‘선박안전정보시스템’에 입력해야 한다. 하지만 강원지부는 관할 구역에서 터진 사고를 파악하지 못했다. 여수지부도 지난해 3월 17일과 10월 13일 두 건의 사고가 터졌지만 전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해 10월 사고는 국내 어선이 아니라 중국 어선과 부딪혀 선수가 파손됐지만 사고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감사실에 적발됐다.
선박 검사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최대승선인원’ 산정은 제멋대로였다. 최대승선인원은 배에 탈 수 있는 최대 인원으로 배의 안전성과 직결된다. 인천지부는 2011년 2월 ‘알렉스호’의 최초 정기검사를 하면서 최대승선인원을 기준보다 늘려줬다. 1.66t 소형 선박인 알렉스호는 4명이 타야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부실하게 검사한 인천지부는 6명이 타도 좋다고 승인했다.
제주지부는 배를 평가하면서 길이를 제대로 재보지도 않고 문서에 적혀 있는 수치만 보고 최대승선인원을 정하기도 했다. 심지어 고흥지부는 제주지부와 같은 방식으로 승선인원을 잘못 산정한 선박이 2011년 12월부터 넉 달간 총 14척이나 됐다.
선박의 항해구역을 엉터리로 지정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18일 ‘금창호’를 검사한 사천지부는 국내 항해에만 다니도록 한 기준을 특별한 이유 없이 지우고 선박검사증서를 발급해줬다. 이 덕에 금창호는 국내 바다를 벗어나 인근 연해에도 나갈 수 있는 배가 됐다. 제주지부도 2012년 12월 ‘제2대림호’와 ‘601한일호’를 검사하면서 ‘국내 항해에 한함’이라는 말을 빼버렸다.
부실 관리가 잇따르자 선박공단은 지난해 10월 해양수산부로부터 선박 해양사고 예방조치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회 역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선박검사 합격률 100%에 비해 결함으로 인한 사고가 급증하고 있으므로 선박안전점검 기준 강화가 필요하다”며 “선박사고 원인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적 요인에 의한 사고를 줄이기 위해 안전교육 강화 등의 대책도 필요하다”고 했다.
◇도덕적 해이도 만연=선박공단 감사실은 안전불감증뿐 아니라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도 지적했다. 여수지부에서는 직원들이 법인카드를 제멋대로 쓰다 덜미를 잡혔다. 출장이나 내부 결제를 받은 경우에만 공휴일 혹은 자정 이후 사용이 가능했지만 여수지부 직원들은 일요일에 마트에서 56만원어치가 넘는 물건을 사는가 하면 한 횟집에서는 일과시간 이후 48만4000원을 분할결제하기도 했다.
부산지부에서는 주유용 카드가 버젓이 있는데도 법인카드를 쓰거나 개인카드로 결제한 뒤 돈을 돌려받기도 했다. 부산지부의 한 직원은 주유용 카드를 쓸 수 있었지만 일반 법인카드와 개인카드로 무려 239만원어치를 주유했다. 하루 주유액이 26만3340원이나 된 날도 있었다. 또 업무용 차량의 하이패스카드를 충전하면서도 법인카드 충전이 되지 않는다며 개인카드를 쓴 후 그 대금을 청구해오다 감사실의 지적을 받았다.
선박공단은 한국선급과 더불어 국내 선박검사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대형선은 한국선급이, 중·소형선은 선박공단이 주로 맡아 경쟁과 견제도 전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도 쉽게 은폐되는 구조다. 선박공단은 이런 상황 덕에 각종 문제를 안고도 지난해 행정안전부로부터 ‘재난관리 유공 국무총리 단체표창’을 받는 등 6개 정부기관으로부터 무더기로 상을 받기도 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