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노트] (17) 운동화, 다리 아래 뭉게구름
입력 2014-04-29 02:08
운동화가 패션으로 인정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마다 짜릿하게 행복하다. 운동화의 가뿟함은 독보적이다. 마치 운동화를 동반한 보폭 사이사이에 헬륨이 주입된 듯하다. 나는 새하얀 운동화를 좋아한다. 그 깔끔한 매력에 처음으로 매료된 건 스위스 중학교 시절 상급반 여학생의 곧게 뻗은 다리 아래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흰색 운동화를 접수한 순간이다. 그날 이후 동작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으면 꼭 운동화를 신게 되었다.
왜 운동화인가? 운동화는 옷을 입는 데 재미를 싣는다. 형형색색의 운동화로 물든 진열대는 열대어로 가득한 수족관을 연상시킨다. 평범한 의상에 색채감이 풍부한 운동화를 신으면 분위기가 살아난다. 참고로 발목을 덮는 하이톱 스타일은 양말에 쓰는 신경을 거두어들이니 편하다. 화려한 색을 옷차림에 끌어들이고 싶으나 감히 그러지 못할 때 운동화는 적합한 실험 대상이다. 격렬한 빛이 발에 담기면 경쾌함이 찾아들어 용서가 된다. 운동화를 즐겨 신으면 운동화에 옷을 맞추는 변화를 체험한다. 운동화가 기준점이 되면 젊은 감각으로 튜닝이 된다.
신기한 현상은 나이를 먹을수록 운동화와 더욱 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가씨 시절에는 구두를 신어야 멋이 난다고 확신했다. 중년으로 변하면서 젊음의 노래에 귀가 쫑긋해지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현대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운동화를 향한 관심은 더 높아질 것이다. 운동화는 기압이 잔뜩 들어간 심신을 이완시켜주는 묘약이다.
김은정(패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