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문화] 일상이 돼버린 재난, 그 고난 극복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
입력 2014-04-29 02:31
재난 서사라는 것이 있다. 엄청난 자연 재해, 전염병 창궐 등 한 도시와 국가, 나아가 인류 전체의 존망이 달린 상황을 묘사한 재난 서사는 더 이상 외국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보듯, 재난 서사는 ‘지금 여기’의 문제이다.
근래 들어 재난을 다루는 소설들이 부쩍 늘고 있다. 예컨대 윤이형의 ‘큰 늑대 파랑’,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 황정은의 ‘옹기전’은 하위 장르였던 재난 서사를 우리 시대의 한 코드로 읽어 낸 작품들이다.
문예지 ‘세계의 문학’ 2014년 봄호에 실린 특집 ‘재난 이후, 사유로서의 재난’은 재난이란 코드가 얼마나 빠르게 우리 일상에 침투해 ‘재난의 일상화’라는 아이러니를 빚어내고 있는지를 적시한다. 이에 따르면 재난 서사는 현재의 위험한 상황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를 보내는 무의식적인 신호이자 현실의 재난을 지각하고 해석하는 틀로 작동한다. 문학평론가 강유정은 ‘재난 서사의 마스터 플롯’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재앙이 ‘뜻하지 아니하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불행한 사고’ 그 자체를 가리킨다면, 재난은 재앙이 가져온 고난을 의미한다”면서 “재앙이 사건이라면 재난은 그 수용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누가 ‘재앙’을 겪는가, 라는 질문으로 요약된다. 우리가 연민하고 동정하는 주인공이 ‘원치 않았던’ 결말에 가닿는 결말을 ‘파국(catastrophe)’이라고 전제할 때, 그 파국이 ‘나(주인공)’에게 도래했을 때 비로소 재앙은 재난이 된다는 것이다. 재앙은 발생한 그 순간에 서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에게 영향을 미칠 때 파국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재난은 결국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우리 시대 재난 소설의 목록은 박솔뫼의 단편 ‘우리는 매일 오후에’와 ‘겨울의 눈빛’,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 정유정의 장편 ‘28’ 등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들은 한결같이 주인공에게 닥친 재난을 과거형으로 다루고 있지만 그걸 읽는 우리가 인식하게 되는 건 오히려 과거의 재난이 아니라 재난의 현재성이다. 강유정은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는 안전 불감증에 빠져 허우적대는 현재의 재구성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재난 소설 속 희생자가 아니라 생존자가 되길 희구한다. ‘주인공’이 죽지도 파멸하지도 않고 살아남는 그런 재난 소설을 읽고 싶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