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민주화 20주년… 흑백 빈부격차 여전 멀고 먼 ‘무지개 국가’
입력 2014-04-29 02:51
1994년 4월 27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46년간의 공식적인 인종 차별을 마감하는 최초의 민주 선거가 실시됐다. 흑인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진 선거에서 넬슨 만델라는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남아공은 이날을 ‘자유의 날(Freedom Day)’로 부르며 기념하고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7일(현지시간) 남아공 정부는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민주화 2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제이컵 주마 대통령은 5000여명의 시민을 향해 “남아공은 오늘날 훨씬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됐다”고 밝혔다.
정말 그럴까. 다음 달 7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남아공에는 만델라와 함께 민주화 이후 20년 가까이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대한 불만이 가득 차 있다. 집권당의 부패로 부(富)가 소수에 집중되면서 대다수 국민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흑인과 백인 간 불평등도 심각한 상태다.
각종 통계는 남아공의 현실을 증명한다. 남아공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백인이 여전히 남아공 경제를 좌지우지하면서 남아공 기업 임원진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고, 흑인은 19.8%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백인 가정의 평균 소득은 인구 80%를 차지하고 있는 흑인보다 6배 가까이 많다.
남아공 인종관계연구소(IPR)의 지난해 보고서를 보면 흑인 40%는 빈곤층으로 분류되지만 백인의 경우 1%에 불과하다. 집권당인 ANC가 흑인의 경제력 향상을 위해 흑인경제육성정책(BEE)을 시행했지만 소수 세력에 혜택이 몰리면서 대다수 흑인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실패한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남아공의 여전한 불평등은 흑백 인종이 어울려 풍요롭게 사는 ‘무지개 국가’의 꿈을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아공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즈먼드 투투 주교는 남아공 일요판 신문인 선데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주마 대통령과 ANC의 실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민주화 이후 더딘 변화를 언급하면서 “마디바(‘존경받는 어른’이라는 뜻으로 만델라의 애칭)가 죽어서 다행이다. 살아서 이런 현실을 보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이냐”고 말했다.
흑백 간 불평등 속에 인종 갈등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IPR의 2012년 조사에 따르면 흑백 관계가 향상되고 있다고 믿는 국민은 39%에 불과했다. 2000년 72%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특히 2011년 흑인 노숙인을 때려 숨지게 한 백인 4명이 올 초 풀려나자 인종 갈등은 폭발 직전까지 갔다. 흑인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남아공의 사법제도가 백인에게 유리하다는 증거”라고 흥분했다. 하지만 IPR의 조지나 알렉산더 연구원은 “전반적으로 인종 갈등은 몇몇 사건에서 보는 것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다”면서 “평균적인 남아공 국민들은 서로 간에 평화적인 방식으로 함께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