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무·집·사람… ‘심플’ 장욱진과의 해후
입력 2014-04-29 02:34
“나는 심플하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등과 함께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의 거장 중 한 명인 장욱진(1917∼1990) 화백이 평소 강조한 말이다. 장 화백은 구태의연한 체면과 권위에서 벗어나려고 애썼고 평생 동안 아이와 어른이 모두 좋아하는 단순한 그림을 그렸다.
충남 연기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대하는 시선이 남달랐다. 초등학교 때 ‘전일본소학생미전’에 나가 몸을 온통 새까맣게 칠하고 눈만 하얗게 그린 까치 작품으로 1등상을 받았다. 1939년 일본 도쿄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해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운 그는 6·25전쟁 직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다. 하지만 6년 만에 창작을 위해 교수직을 그만두고 자연과 더불어 살며 동화적이고 심플한 작품을 선보였다. 경기도 덕소(1963∼74), 서울 명륜동(75∼79), 경기도 수안보(80∼85), 용인(86∼90) 등으로 작업실을 옮겨 다니며 작품 활동을 하다 90년 12월 27일 74세로 숨졌다.
그의 예술세계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에 들어섰다. 2010년 설계에 들어가 4년 만에 완공된 지하 1층·지상 2층의 미술관은 그의 그림 속 아담하고 따스한 집 모양을 닮았다. 29일부터 8월 31일까지 열리는 개관전에는 유화 명작 60점과 기증 유화 19점, 벽화 2점, 유품과 건축자료 등을 선보인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눈길을 끄는 것은 보리밭이다. 전시장 안쪽 통로 끝에 작가가 보리밭 사이로 걸어가는 모습을 그린 ‘자화상’(1951)이 걸려 있고, 그림 양쪽에 실제 보리를 심은 패널이 놓여 있어 관람객들을 추억의 시절로 안내한다. 지하층 계단과 2층 전시장에는 덕소 화실에 있던 벽화 ‘식탁’과 ‘동물가족’을 그대로 옮겨와 처음 공개한다.
전시는 ‘하늘’ ‘나무’ ‘집’ ‘사람’의 네 가지 키워드로 구성됐다. ‘하늘’은 작가의 마지막 시기에 제작된 화풍이다. ‘밤과 노인’(1990)에서 보듯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을 초월한 세계를 표현했다. 작가가 작업의 주요 모티브로 삼은 ‘나무’는 인간과 동물, 자연을 모두 품어주는 넓은 아량을 의미한다. ‘거목’(1954)은 이런 나무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다.
작가는 평생에 걸쳐 여러 채의 집을 지었다. 그에게 집은 편안하고 따뜻한 보금자리이자 창작공간이기도 했다. 나무가 있는 집을 배경으로 그린 ‘가족’(1973)은 화목하고 단란해 보인다. ‘두 얼굴’(1959) 등 인물을 단순하게 그린 그림은 작가의 대표적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천진난만한 표정의 아이는 순수함 그 자체이고, 온화한 모습의 여인은 고향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를 기획한 정영목 서울대 교수는 “장욱진은 서양화와 동양화로 구분하는 한국회화의 장벽을 허문 작가”라며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면서 우리의 전통을 현대에 접목시킬 수 있는 조형적 가능성을 회화로 구현했다”고 말했다. 미술관 근처 장흥아트파크와 조각공원을 둘러보면서 ‘아트투어’를 즐기는 것도 괜찮다. 관람료 500∼2000원. 개관식이 열리는 6월 16일까지는 무료(031-8082-4245).
양주=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