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전도의 유산:오래된 복음의 미래’ (김선일 지음, SFC)
입력 2014-04-28 17:41
스코틀랜드 스털링대학의 역사가 데이비드 베빙턴은 1989년에 처음 출간된 자신의 저작『근대 영국 복음주의』(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에서 이후 복음주의를 정의하는 기준으로 학계에 널리 받아들여지는 복음주의의 네 가지 특징을 제시한다. 성경주의, 십자가 중심주의, 회심주의, 행동주의, 이렇게 네 가지 특징을 대변하는 기독교로 규정되는 복음주의는 18세기 이래 주로 영미권에서 성경의 권위에 대한 믿음과, 즉각적인 회심, 십자가 설교로 대표되는 부흥운동, 그 부흥운동이 낳은 전도 및 선교운동을 강조하는 신앙으로 태동했다.
그러다 오늘날에는 19, 20세기 세계선교를 통해 탄생한 비서구 지역을 포함한 전 세계 기독교를 전반적으로 대변하는 운동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복음주의를 특징짓는 이 네 가지 요소는 서로 상관이 없는 전혀 별개의 요소가 아니다. 네 가지 요소는 상호 관련성을 갖고 깊이 연결되어 있다. 즉, 성경의 권위를 믿기에 성경이 말하는바 타락하여 영적으로 죽음에 이른 인간의 회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고, 회심을 강조하기에 그 회심의 기반이 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십자가를 강조할 수밖에 없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회심을 강조하기에 적극적 전도 행위를 통해 영혼을 구하는 소위 구령활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특히 18세기 복음주의 태동기가 지나고 19세기가 되면 미국의 찰스 피니나 D. L. 무디 같은 전도 부흥사가 등장하면서, 집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감정에 강렬하게 호소하는 전도 메시지를 선포하고, 이를 즉각적인 회심이라는 결과로 연결 지으려는 조직적인 부흥집회가 발전한다. 20세기에도 이 현상은 빌리 그레이엄의 집회 등을 통해 더 규모가 커진 조직적인 캠페인으로 발전했고, 이런 집회에서 전도설교 후 예수를 즉각 영접하기를 원하는 이들은 강단으로 나오라 요청하는 순서는 피니나 무디 집회를 특징지은 ‘즉각적 회심’ 요청을 더 강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을 전제하고,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이 가르친다는 것에 딴죽을 걸 기독교인은 많지 않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그에 대해 전하는 이가 있어야 하며, 이렇게 전하는 활동을 성경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명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도 많지 않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의 의무로서의 ‘전도’가 왜 그토록 많은 이들, 특히 잠재적 전도 대상자인 비기독교인에게 그토록 비난 받는 행위로 전락했을까? 심지어 왜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많은 자칭 기독교인도 일부 기독교인의 노골적인 전도 행위에 그토록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전도학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저자 김선일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시작한다. 한국과 미국의 복음주의권을 대표하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과 풀러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역시 복음주의권 학교인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학생을 지도하는 저자는 어떤 의미에서도 전도의 의미와 가치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전도를 믿으며, 전도를 통해서 천하보다도 귀한 한 영혼이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 회심에 이르고 다시 자녀의 지위를 회복하게 하는 전도 활동이 교회의 존재와 활동의 핵심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문제의식은 19세기 이래 대형 부흥집회를 인도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부흥사가 정형화 시켜 놓은 전도행위, 즉 전도를 행하는 자와 전도를 받는 자 사이에 인격적인 만남도 없고, 믿음의 공동체와 인격적으로 접촉하지도 못하며, 하나님 나라 복음의 전 인격적 총체성을 경험하지도 못하며, 결국 이 때문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버지와 자녀 관계 속에서 만나는 경험을 하지 못하게 만든 그 전도 행위를 비판한다. 약 300쪽에 이르는 본문에서 매 장의 논증이 절정에 이르는 길목마다 저자는 반복적으로 외친다.
“우리는 전도를 좀 더 확대된 관점으로 봐야 한다. ‘구령사업’이라는 전도의 나무에만 매달리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삶이라는 전도의 숲을 조망해 보자. 그렇지 않으면 신구약 성경이 일관되고 치열하게 보여주는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놓치고, 전도에 오직 인간의 욕망과 기대만이 남을 것이다”(24쪽). “따라서 복음전도는 우리의 삶 전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특히 교회가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함으로써 공동체의 삶 그 자체가 복음의 메시지가 된다”(45쪽).
“제시된 복음과 그 복음의 진리가 표현하는 내용들이 머리로부터 가슴과 손발로 체화되기 위해서는 그 복음적 삶을 공유하는 문화에 충분히 노출되어야 한다”(135쪽).
“내가 지속적으로 주장하려고 했던 논지는 전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교회 역사의 총체적인 프레임에서 보자는 것이다. 지난 200년 동안의 전도가 즉각적 회심을 이끄는 결신형 전도였다면, 그보다 더 큰 역사의 프레임 속에서 전도는 신선한 복음의 메시지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증명하는 것이었고, 전도의 가장 유력한 매체는 바로 교회였다”(269쪽).
저서 제목에서부터 저자의 깊은 고민이 묻어난다. 전도는 당위이지만, 오늘날 교회 성장의 방편으로 제시되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따라서 전도는 복음의 유산이다. 복음은 천지창조 이래, 아니 영원전 창조주의 작정 때부터 이루어진 행위이므로 오래되었다. 그러므로 복음은 오래된 유산이다. 그러나 이 유산은 지나간 과거의 유물로만 남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오래된 복음이라는 유산을 어떻게 현재와 미래에 적용하느냐를 고민해야 하는 교회의 과제다.
이 책의 최고의 장점은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신학의 조화다. 전도학이라는 학문을 깊은 이론 성찰 없이 행동 방식만을 제공하는 가벼운 실천신학이라 생각하는 이들의 생각을 전환시킨다. 조직신학적으로는 풍성한 교회론, 성경신학적으로는 풍성한 하나님나라 신학, 역사신학적으로는 교회사에 풍성한 전도의 역사적 유산, 선교학적으로는 오늘날 대두된 성경적 하나님의 선교 개념과 선교적 교회 패러다임이라는 각 신학 영역의 핵심 유산을, 장인의 손길로 어느 하나 어색한 돌출 없이 매끈하게 빚어냈다. 한국 신학계에서 전도학이라는 학문 발전사에 하나의 이정표가 될 만한 책이다.
이재근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회사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