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고처럼 답답하고 목이 멘 적 없었다 아이 기다리는 부모들과 끝까지 함께할 것”
입력 2014-04-29 02:13
세월호 참사 진도 봉사현장 지키는 목회자들 이야기
전남 진도군 칠전교회 전정림(63) 목사는 31년 목회활동 중 최근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전 목사는 지난 16일 사고 당일부터 진도군교회연합회 소속 교회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구체적으론 실종자 생환을 위한 기도회 인도, 전국 각지에서 답지하는 구호품 분배 등의 사역을 펼치고 있다.
16일 전 목사는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자 지역교회 목회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도울 방법을 상의했다. 이후 오전 11시쯤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으로 달려갔고 거기서 구조된 탑승객들을 목격했다.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학생들에게 다가가 자신의 휴대폰을 쥐어줬고 부모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 통화가 끝나면 전화기를 받아 “안심하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전 목사는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체험학습을 떠났다가 혼자 극적으로 구조됐던 부천 원일초교 1학년 조요셉(8)군을 현장에서 만났다. 그는 “혼자 돌아다니는 아이가 있기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물어 삼촌과 연락하도록 했다”며 “조군을 보호하고 있다가 진도군청 복지과로 인계했고 나중에 삼촌이 데려가도록 했다”고 말했다.
조군은 당시 한 남성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배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사고 3일 만인 지난 18일 조군의 형(11)이 시신으로 발견됐고 지난 22일엔 어머니마저 주검으로 돌아와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는 이번 참사에 대해 “원칙 대신 변칙만 난무했던 한국사회가 비참한 결과를 맞은 것”이라며 “목회나 신앙생활도 그동안 변칙이 많지 않았나 반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신앙도 원칙과 진실이 앞서야 한다”며 “이는 말씀 안에서 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목사는 지난 27일 주일예배에서 ‘되돌아보자’(전 7:13∼14)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그는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라고 하신 성경 구절처럼 지금 우리 민족과 사회, 교회, 개인은 냉철히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며 “누구를 탓하기보다 자신부터 참회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그는 “신자들은 자신이 속한 일터에서 목숨을 걸 정도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며 “정직과 진실이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도 신진교회 조원식(55) 목사는 팽목항에서 노란 조끼와 모자를 눌러쓴 채 연신 움직였다. 전국 교회로부터 도착하는 구호품 트럭에서 물품을 직접 나르는 것은 예사였고 하루에도 수십 차례의 자원봉사 문의 전화를 일일이 받고 있었다. 그는 현장에서 기독교 봉사활동을 진두지휘했다.
팽목항은 그동안 울음바다였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오면 부모들은 오열했고 어제도 오늘도 안타깝게 자녀의 귀환을 기다리는 애끊는 간구가 서려 있었다. 조 목사는 가족들의 그런 마음을 고스란히 자신의 가슴에 담았다. 그는 “가족들이 느꼈을 분노와 슬픔을 함께 느끼고 있다”며 “지난 25일에는 가족들이 트레이닝복과 면티가 부족하다고 요청해 추가로 제공했다”고 말했다.
조 목사는 1993년 목포 인근에서 아시아나 항공기가 추락했을 때 하루 종일 부상자를 업어 나르는 등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참사를 통해 위기에 빠진 이웃을 향한 한국교회의 봉사 열정이 아직도 뜨겁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구세군 서준배(43) 자선냄비본부 사관은 지난 17일부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을 위한 ‘희망의 밥차’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난 21일엔 저녁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찬송가 ‘천부여 의지 없어서’를 연속해 불렀다.
그는 “이 같은 고난이 ‘어쩌면 우리 때문이 아닌가’라며 회개하고 긍휼을 구하는 마음으로 찬송하자”며 기도회를 인도했다. 당시 기도회에는 따로 순서지가 없었다. 4곡의 찬송가 악보를 담은 용지 한 장이 전부였다. 서 사관은 ‘천부여 의지 없어서’와 함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2곡을 직접 선정했다고 했다.
서 사관은 “현재 겪고 있는 것은 실종자 가족만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통”이라며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하고 주의 은혜를 구하자”고 말했다. 그는 기도회에서 순서를 맡은 목회자 이름도 일절 부르지 않았고 그저 ‘구세군 사관’으로 부르는 등 가족을 배려했다.
사고 첫날부터 봉사 부스를 차리고 지난 19일 진도군교회연합회에 봉사 천막을 인계했던 조현삼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장은 그동안 수없이 많은 재난 현장을 다녔지만 이번 사고처럼 목이 멘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다른 재난과 달리 이번엔 아이들의 희생이 커서 부모 입장에서도 안타까웠다”며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들과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종자 가족을 위한 ‘맞춤형’ 봉사로 팽목항 가족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지난 23일엔 가족들의 편의를 위해 물품 보관 박스와 트레이닝복, 여성용 온열기 등을 전달하기도 했다.
곽수광 푸른나무교회 목사는 지난 22일 교회 청년 3명과 함께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구호품 전달과 청소 등을 펼쳤다. 곽 목사는 “희생·실종자 가족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가 절실하다”며 “작은 공감과 위로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에 만연된 물질만능, 성공지상주의가 빚어낸 결과일 수 있다”면서 “교회는 성공이나 번영을 추구하는 풍토에서 벗어나 사회를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도=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