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기자의 워크홀릭] 황토 위에 꽃잎, 그 위에 맨발… 대전 계족산 황톳길 맨발코스

입력 2014-04-29 02:06


계족산이 숲의 귀빈을 맞아 레드카펫을 깔았다. 각양각색 잘 차려 입은 이들이지만 발만큼은 태초의 모습으로 그 위를 올랐다. 팡

팡 목련이 폭죽처럼 터졌다. 그와 동시에 봄의 왈츠가 울려 퍼졌다. 그 운율에 맞춰 발걸음도 유쾌하게 딴따단 딴따단.

◇계족산 명물, 14.5㎞ 황톳길 맨발코스= “야야, 여 다 전부 맹발(맨발)로 댕기는데 신발 신은 우리가 잘 못 된 거 아이가?”

대전 계족산 황톳길을 걸으러 먼 걸음 한 듯한 부부가 멋쩍은 인사를 건넨다. “시원한 게 좋습니다. 한 번 벗어보세요”라고 권해도 아직 누드로 나설 용기는 없는 듯 그저 씩 웃고 만다.

계족산에는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에코힐링 맨발코스’가 있다. 잠깐 체험만 하는 코스가 아니다. 장동산림욕장에서 시작해 계족산성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도는 14.5㎞ 길이의 임도 절반을 황토로 깔아놓아 제대로 맨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당장 신발을 벗어던지면 완만한 오르막을 따라 찰떡같은 황톳길이다. 봄을 맞은 농부가 밭을 갈고 물을 대듯, 황토를 갈아놓고 촉촉하게 물을 뿌려놓았다. 찰박찰박 맨발이 황토 위를 미끄러지듯 걷는다. ‘어 이것 참, 걸을 맛나네!’ 감탄이 걸음마다 터진다.

산중음악회 ‘뻔뻔한 클래식’ 공연장까지 몸 풀기를 위한 오르막이다. 이후부터는 완만한 평지니 초반부터 땀 빼며 서두르지 말고 쉬엄쉬엄 걸을 일이다. 공연장은 주말이면 몇 백부터 천 단위 규모의 관객들이 찾지만 거창하진 않다. 무대 데크와 그 앞 여기저기 놓인 돌덩이가 공연석이다. 인공시설로 요란 떨지 않고 자연스럽게 둔 것이 흐뭇하다. 입구부터 공연장까지 최근에 설치한 무장애 데크로드가 있어 유모차와 휠체어도 너끈하게 오를 수 있다. 삼거리부터 한 바퀴 돌게 되는 임도는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 알 수 없는 신선놀음이다.

◇봄은 볼 게 많아 봄= 봄, 봄은 볼 게 많아서 봄이다. 바람이 불자 뭉게뭉게 피어오른 벚나무 아래로 하르르 꽃비가 내렸다. 목련은 껄껄껄 헤프게 웃어 재꼈다. 쑥스러운 개나리는 방싯방싯 웃었다. 연녹빛 새 생명들은 조잘조잘 할말이 많다. 깔깔깔 잘 웃는 철쭉만 아직까지 새침 떼는 중이다.

길 안내를 자처한 조웅래 더맥키스컴퍼니 회장은 “직선이 50m 이상 되지 않고 곡선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며 “계속해서 더 좋은 풍경이 나온다”고 장담을 한다. 이미 눈이 부셔 발걸음 떼기 아쉬운데, 곧 그의 말은 허풍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최고의 ‘S’라인”이라는 말에 뒤를 돌아보니 과연. 굽이굽이 에두르는 산길에 붉은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조 회장이 굳이 황토를 고집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보드라워 걷기에도 좋지만 신록과 어우어지는 그 고운 색감이란. 손가락으로 쓰윽 문질러 눈두덩이 위에 얹는다면 얼마나 고울까.

화사한 봄꽃들이 지고나면 길가 바닥으로 시선을 낮추시라. 우리가 모를 뿐, 저마다 이름을 가진 앙증맞은 야생화가 한 가득이다. 굵어진 가지마다 무성한 잎들이 만든 녹음 동굴 아래 진정한 힐링의 시간이 시작된다.

글=김난, 사진=윤성중 쿠키뉴스 기자 na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