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류상으로만 안전한 여객선, 청맹과니 나라

입력 2014-04-29 02:34

서류상으로 세월호는 흠잡을 데 없이 안전한 여객선이었다. 선박안전기술공단(KST)은 침몰 사고 발생 40여일 전인 지난 2월 25일 세월호 관계기관 안전점검에서 양호 판정을 내렸다고 한다. 해양경찰, 한국선급도 마찬가지다. 승객과 화물을 더 싣기 위해 무리하게 증축해 선박의 안전운항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복원력에 중대한 하자가 있어도 이들에게 세월호는 운항하는 데 전혀 지장 없는 배였다.

서류만 대충 훑어보고 형식적인 점검을 했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고철덩어리나 다름없는 세월호가 안전검사를 통과했을 리 없다. 전직 세월호 선원들과 선박 전문가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세월호는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스태빌라이저, 평형수 탱크, 조타기, 레이더 등 거의 모든 부속이 성한 게 없어 언제 가라앉을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안전검사에서 이런 것들이 하나도 걸러지지 않았다. 해경, 한국선급, KST 중 어느 기관 하나라도 매뉴얼에 따라 제대로 현장검사를 실시했다면 이 끔찍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이들의 직무유기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가장 먼저 도망간 세월호 선원들보다 나을 게 없다.

KST는 선박의 안전검사 및 해양사고 방지를 위해 연구 등을 하는 공공기관이다. 그동안 국회와 정부로부터 도덕적 해이와 안전불감증에 대해 수차례 지적을 받았음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선체 결함으로 인한 사고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KST의 선박검사 합격률은 100%였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국회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이 점을 지적하며 요구한 선박 안전점검 기준 및 안전교육 강화 등의 대책만이라도 충실하게 이행됐더라면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세월호 참사는 설마 하는 방심과 전형적인 탁상행정이 빚은 인재의 결정판이라는 사실을 재삼 실감나게 한다.

우리는 지난 25일 승객·선원 334명과 차량 60대를 싣고 대서양을 운항하다 화재가 발생한 여객선 사고에 대처하는 스페인 구조 당국과 선원들의 대응을 꼭 배워야 한다. 배에 불이 나자 승무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비상벨을 울려 화재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런 연후에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며 갑판으로 대피하도록 지시했다. 다른 승무원들은 화재를 진압했다. 긴급 구조 요청을 받은 스페인 구조 당국도 신속한 조치를 취해 단 1명의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역할분담이 완벽하게 이뤄졌다. 평소 몸에 밴 행동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우리는 껍데기만 ‘안전 선진국’이었지 실제로는 어디에도 안전이 존재하지 않는 ‘안전 후진국’이었다는 교훈을 바다 밑 세월호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