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단독] 14년간 혈세 쏟아부었지만… 현장에선 활용 안됐다

입력 2014-04-28 02:07


정부 발주 ‘해난사고 예방·수습대책 보고서’ 분석해보니

정부는 거액을 투자해 해난사고 예방법과 수습 대책을 연구해 놓고도 정작 연구 결과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발전시키는 데 실패했다. 50여건의 해양안전 연구용역 보고서, 거창하게 발족한 해난사고 원인근절 포럼, 100억원에 육박하는 예산 등 정부가 그동안 해놓은 조치들은 사고 현장에선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미리 ‘외양간 고쳐라’ 수차례 경고했지만=이번 참사에서 희생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데는 선원들의 안전의식 부재 탓이 컸다. 대부분 수십년 배를 탄 ‘베테랑’이었지만 안전의식은 초보나 다름없었다. 해운사와 선원들의 안전불감증은 정부가 발주한 연구용역에서 여러 차례 지적됐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한국해양수산연구원이 수행한 ‘선내 안전·보건 및 사고예방 기준 마련 연구’(2010)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연평균 300여건의 크고 작은 해난사고가 발생한다. 그러나 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내항선원 3명 중 1명(36.1%)은 “선내 안전 및 사고예방 기준에 대한 제도가 없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선내 안전·보건 교육훈련 과정을 개발하고 정부 차원에서 법 규정을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같은 기관이 수행한 ‘대형 해양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관리체제 운영개선 연구’(2010)에서도 “회사가 선박 안전관리에 충분히 지원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충분하다’고 답한 선원은 33.1%에 불과했다.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로는 ‘운항 일정이 바빠 시스템을 유지할 시간이 부족함’을 꼽았다. 세월호 역시 최대한 많은 승객과 화물을 싣고 최대한 빨리 목적지까지 가는 데 급급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과다선적 문제는 무려 12년 전부터 위험성이 지적돼 왔다. ‘우리나라 해양안전정책 수용 실태 조사 워킹 그룹 운영보고서’(2002)는 “여객선들이 과적 대비가 미흡하고 내항 선박의 경우 일부 해운업 종사자의 도덕성 결여로 (과적) 관련 법규가 준수되지 않고 있다”며 “화물 적재 상태에 따른 위험 사전 경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선박검사기술협회가 해양수산부 의뢰로 진행한 ‘해양사고 조사 및 심판 정책자료 개발 연구’(2006) 보고서는 “하위급 면허를 소지한 선장이나 항해사가 레이더 항법 및 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침몰 때도 경험이 적은 3등 항해사가 조타실 키를 잡고 있었다.

◇재난 대응 매년 연구해도 사고 터지면 ‘우왕좌왕’=정부는 2001년 이후 매년 여러 전문기관에 재난 대응책 연구용역을 줬다. ‘해양사고 수습대응 시스템 개발연구’(2001)부터 ‘재난관리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 방안’(2013)까지 자그마치 14년간 재난 대응책이 연구됐다. 그러나 사고가 터질 때마다 우리나라의 대응은 후진국 수준이라는 비난을 듣는다.

해양수산부가 한국해양대 해사산업연구소에 4700만원을 주고 맡긴 ‘국적선 PSC 품질관리 프로그램 개발’(2006) 보고서에 따르면 2001∼2005년 국내 선박들은 구명설비, 안전설비, 장비결함 등으로 391차례나 출항 정지를 당했다. 보고서는 “자국 선박이 국제협약이나 국내법에 적합함을 보장하는 건 국가의 기본 의무”라고 강조했지만 이번 사고로 대한민국 국적선에 대한 세계의 신뢰는 뚝 떨어졌다.

14년간 쌓인 매뉴얼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해양수산부는 올해도 해양안전 예방책을 연구하겠다며 예산 75억원을 책정했다. 이 밖에 해난사고 예방교육 프로그램 개발, 해운선사 안전관리 역량강화 사업 등에도 추가 예산을 배정하고 연구 중이지만 정책 반영 여부는 미지수다.

진도=정부경 이도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