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총리 사의 표명] 26일 관계장관회의 뒤 결심…靑과 직접 통화하며 일정 조율
입력 2014-04-28 03:32
정홍원 국무총리는 기자회견 하루 전인 지난 26일 사퇴 결심을 하고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정 총리는 비서실을 거치지 않고 직접 박근혜 대통령 또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통화하면서 사퇴 의사를 밝힌 뒤 기자회견 일정을 조율한 것으로 관측된다.
정 총리가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 수습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관계장관회의를 열었지만 자신의 거취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를 마친 뒤 사퇴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회의를 마친 뒤 정 총리가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 도착한 시간은 같은 날 오후 9시였다. 일부 총리실 관계자들은 총리의 귀경 직후 ‘27일 새벽에 출근하라’는 상부 지시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받았다고 한다.
정 총리는 27일 새벽 실무진에게 긴급 기자회견 준비를 지시했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이나 이호영 총리 비서실장, 이석우 공보실장도 기자회견 3시간 전에야 사의 표명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총리는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 3층 합동브리핑룸에 도착해 다소 지친 모습으로 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고 무거운 표정으로 회견장을 떠났다. 정 총리는 집무실에 잠시 머물다 오전 11시15분쯤 청사를 빠져나가 서울 삼청동 공관으로 향했다.
정 총리는 박 대통령이 사고 수습 후 사표 처리 방침을 밝힘에 따라 당분간 총리로서 업무를 이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지난해 2월 26일 박근혜정부 초대 총리로 취임한 정 총리의 낙마는 기정사실화됐다.
정 총리는 사고 발생 첫날인 지난 16일 오후 중국·파키스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다 태국 방콕에서 사고 소식을 처음 접했다. 대형 사고라고 판단한 정 총리는 귀국 후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으나 사고 수습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왕좌왕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
우선 사고대책본부가 있는 전남 진도군청에서 간단하게 회의를 한 뒤 진도실내체육관으로 실종자 가족들을 찾아갔지만 구조작업 계획을 속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줬다. 정 총리는 분노한 가족들과 제대로 면담조차 못한 채 봉변을 당하고 10여분 만에 물러나야 했다.
정 총리는 이후 범정부 차원의 사고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직접 본부장을 맡아 현장에 상주하며 사고 수습을 지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구조작업 등 초기 대응이 미흡했고 사망자·구조자 집계에서도 혼선을 초래하는 등 문제점을 드러냈다.
정 총리는 김용준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총리 후보자 자리에서 갑자기 사퇴하면서 ‘대타’로 기용됐다. 총리로 취임한 뒤 정부서울청사와 정부세종청사를 오가며 행정부를 통솔하고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임무를 무난히 수행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국정 전반에 걸친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책임총리제를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역대 정부에서 국정운영 실패에 책임을 지고 민심 수습을 위해 물러난 총리가 적지 않다. 김영삼정부 초대 총리였던 황인성 전 총리는 1993년 12월 쌀 시장 개방 파동으로 10개월 만에 사퇴했고 이영덕 총리도 성수대교 붕괴 등 사고를 수습한 뒤 1994년 12월 사퇴했다. 이명박정부의 정운찬 전 총리는 2010년 10월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10개월 만에 퇴진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