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이랑 적막… 씨 뿌리기 진력” 이순신, 전쟁 중 식량 확보 의지 서신 발굴
입력 2014-04-28 02:54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 ‘이순신의 리더십’ 개정판 펴내
임진왜란 당시 현장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판단을 명확히 밝히고, 백성의 고충을 늘 생각하면서 전쟁 중에도 농사를 지어 식량을 확보하게 한 이순신의 철저함을 엿볼 수 있는 서신이 발굴됐다.
‘난중일기’ 교감완역본을 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충무공 탄생일(28일)을 앞두고 최근 출간한 ‘이순신의 리더십’ 개정판에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이순신이 경상우도 순찰사 김성일에게 보낸 편지(사진)를 처음 소개했다. 이 편지는 경북 안동의 김성일 종가에서 소장하던 것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입수해 자료화한 것이다.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김성일은 이순신에게 ‘화공을 사용해 왜구를 소탕하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이순신은 4월 1일 수군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판단을 정중히 밝힌 답신을 보냈다. 이순신이 2∼3월 웅포(지금의 경남 진해)에서 7차례 큰 승리를 거둔 이후였다.
“애초 생각은 진해가 부산으로 가는 길목이어서 흉악한 적들이 요새를 지키고 나오지 않는데, 명나라 군사가 남하하는 날 수군을 거느리고 곧장 부산으로 가면 필시 후방을 돌봐야 하는 걱정이 들 것이므로 그때 이를 불로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형세는 명군이 오랫동안 지체하고 있으니 만약 저들의 배를 불사르더라도 배만 없앨 뿐이고 왜구는 잠시 멈추는 것입니다. 영감께서 알려주신 계책이 이러하니 어찌 시행될 수 있겠습니까.”
이순신은 명나라 군대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는 화공을 쓰더라도 왜구를 소탕할 수 없으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리라고 판단해 이같이 반론했다. 그러면서 이런 심경도 털어놓았다. “석 달의 봄날이 이미 지나고 남쪽의 이랑은 적막하니 변란을 겪은 곳보다 더 심각합니다. 가까운 시일에 경내로 돌아가서 각 함선의 군사들을 씨 뿌리기에 진력하게 하고 명나라 군사들의 소식을 듣는 대로 즉시 바다에 내려가기를 꾀하고자 합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