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영석] 대통령은 재난 컨트롤타워다
입력 2014-04-28 02:53
9·11테러 사흘 뒤인 2001년 9월 14일. 갈색 점퍼를 입은 50대 중반의 남자가 흙먼지가 자욱한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붕괴 현장에 나타났다. 자원해서 구조작업에 나선 은퇴 소방대원과 어깨동무를 한 뒤 메가폰을 잡았다.
“나는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가 여러분의 말을 듣고 있고 이 빌딩을 무너뜨린 자들도 우리 모두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9·11테러 직후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루이지애나주와 네브래스카주 군기지를 전전하다 10여 시간 만에 백악관에 복귀해 ‘겁쟁이’로 불렸던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의 ‘메가폰 연설’이다. 그는 미국 국민을 감동시켰고, 그리고 단결시켰다.
중국 쓰촨성에 규모 8.0의 대지진이 강타한 2008년 5월 12일. 원자바오(溫家寶) 당시 중국 총리는 지진 발생 2시간 만에 현장을 찾았다.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얘들아 울지 마라. 나는 원 할아버지야. 국가가 너희를 책임질 거야”라고 말했다. 그는 가랑비에도 아랑곳없이 메가폰을 잡고 “제가 왔습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중국은 당시 원 총리가 사용했던 메가폰을 국가 1급문화재로 지정했다고 한다.
2010년 4월 20일 발생한 석유회사 BP의 석유시추시설 폭발사고. 열흘 뒤 미국 루이지애나주 멕시코만 사고 현장을 찾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세차게 내리는 빗속을 걸어갔다. 국가원수용 검은색 대형 우산은 보이지 않았다. 연설 내내 우산은 없었다. 국민을 대신해 BP에 대한 분노를, 희생자들에겐 사죄를 그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현장을 세 차례 더 찾아갔다.
세월호 침몰 사고 초기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도 이에 못지않았다. 지난 17일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과의 대화는 신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30여분의 대화가 끝이었다. 지난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 동안 박 대통령의 공식 일정에 ‘세월호’라는 단어는 없었다. 공무원들을 향한 질타가 대신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책임 방기’ ‘불법 묵인’ ‘자리보전’이라고 표현했다. ‘민형사상 책임’ ‘퇴출’ ‘엄벌’이라는 경고도 했다. 법률에서 정한 최고위직 공무원인 대통령이 하위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화법은 고스란히 청와대 고위 공무원들에게도 옮아간 듯하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3일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했다.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은 서남수 교육부 장관에 대해 “라면에 계란을 넣어 먹은 것도 아닌데”라고 옹호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청와대가 아닌 ‘남의 일’이라는 뉘앙스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고 수습이 진행 중”이라며 아직 대통령이 사과할 계획이 없다고 한다. 1993년 10월 12일 서해 페리호 침몰 사고 현장을 찾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국민에게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부터 했다. 2003년 2월 21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대구 지하철 참사와 관련해 “죄인된 심정”이라며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말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사고의 원인 제공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과부터 했다. 왜 그렇게 했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정파의 문제가 아니다. 총리의 사퇴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은 최고위직 공무원이자 재난 컨트롤타워다. 몇 번이라도 현장을 찾아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의 손을 잡아주면 안될까. 그들에겐 따뜻한 위로와 진정한 사과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영석 정치부 차장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