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수학여행 간다고 들떴던 아이들 모습 선한데…”
입력 2014-04-26 02:20
“너희 여행가니?” “네, 저희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요!”
지난 15일 인천항 연안부두 여객터미널은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가득했다. 아이들은 서로 장난치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등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단원고 학생들과 같이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향할 예정이던 김모(59·여)씨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탑승을 기다리던 오후 5시쯤부터 1시간30여분 동안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너희 돌아올 때도 이 배 타고 오니?”(김씨)
“아니요. 제주도에서 올 때는 비행기 탄대요!”(학생들)
“친구들이랑 여행가니 좋겠네?”(김씨)
“엄청 좋아요!”(학생들)
남편과 통화할 때도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 때문에 수화기 너머 음성이 잘 안 들릴 정도로 아이들은 신이 나 있었다.
오후 6시30분 예정이었던 출항이 늦어지자 김씨는 배에서 내려 항구로 나갔다. 그런데 안개가 심상치 않았다. 항구에서 바라보니 세월호의 선수 부분만 희미하게 보였다. 평소 제주도를 왕래할 때 배 전체가 눈에 들어오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안개 때문에 출항이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자영업자인 김씨는 세월호가 예정대로 16일 정오 제주도에 도착하면 하룻밤 묵은 뒤 이튿날 인천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18일 오전부터 가게 문을 열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빠듯했다. 오후 8시가 되자 또 한 차례 출항 지연 방송이 나왔다. 한 승무원은 “오후 11시까지 기다렸다가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더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김씨는 여객터미널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로 제주도에 도착한 김씨는 이튿날 점심을 먹다가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 당신이 타려던 배가 침몰했대.” 김씨는 귀를 의심했다. “농담하지 말라”고 대꾸하며 TV를 틀어보니 여객터미널에서 같이 웃고 떠들던 아이들이 탄 배가 물속에 거의 잠겨 있었다.
김씨는 25일 “크게 웃으며 떠들던 아이들의 모습이 계속 떠오른다. 우리만 살아서 미안하다. 이게 모두 꿈이었으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제주도에서 머물던 하룻밤 동안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아이들이 무사하길 바라는 예배만 드렸다.
김씨는 “만약 30분만 출항이 빨랐어도 내가 아이들과 함께 그 배에 탔을 것”이라며 “아직 꿈도 피우지 못한 아이들과 가족들이 저렇게 고통 받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괴롭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