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탈진한 가족들… 울부짖음보다 가슴아픈 적막이 흘렀다
입력 2014-04-26 02:21
25일 전남 진도에는 노란 리본이 나부꼈다.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나무마다 ‘무사귀환’의 바람을 담은 리본이 달렸다. 체육관 입구에선 자원봉사자들이 계속 리본을 만들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 앞에 와 서면 조용히 리본을 달아줄 뿐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나눴다.
팽목항은 무섭게 차분했다. 전날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등을 붙잡고 17시간 면담을 이어가며 “아이들을 구해 달라”고 외치던 울부짖음은 사라졌다. 날을 새며 실시간 수색 상황에 집중하느라, 한없이 부족해 보이는 구조작업에 울분을 토해내느라 탈진한 가족들은 더 이상 항의할 힘도 없어 보였다. 가족 대기 장소에는 절반이 잠들어 있었고 나머지는 멍하니 TV 화면을 응시했다.
다같이 모여 큰 소리를 내던 밤과 달리 가족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져 서너명씩 모여 있었다.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또 자신에게 주문을 걸 듯 “꼭 찾을 수 있을 거야”라며 낮은 목소리를 주고받기만 했다. 그 외에는 말을 아꼈다.
한 50대 남성은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홀로 앉아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데도 미동조차 없이 바다만 바라봤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소란스러웠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뜨거운 햇살에 달아오른 땅을 식히려고 자원봉사자들이 가끔 바닥에 물을 뿌리는 ‘촤악’ 소리만이 정적을 깼다.
체육관엔 사람이 절반 이상 줄었다. 열흘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켰던 실종자 가족들은 하나둘 떠났다. 체육관 바닥에 자리가 없어 이곳저곳 대충 매트를 깔고 이 공간을 꽉 채웠던 이들이 시신으로 돌아온 가족과 함께 떠나면서 남은 이들의 공허함은 더욱 커지고 있다. 떠난 이들의 자리에는 단정하게 개어 놓은 이부자리만 남았다.
오후 3시30분쯤 체육관 단상에 한 남성이 올라와 “우리 모두 내 새끼 내 품에 빨리 안아야 하니까 치과 기록이나 상처 같은 것 종이에 써주세요”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미리 써주시면 여기 분들이 참고해서 (시신을) 발견했을 때 신원 확인하고 바로 연락한대요”라고 소리쳤다.
정적이 흐르던 체육관이 처음 술렁였다. 가족들은 하나둘 앞쪽 단상으로 걸어 나갔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어떤 상처가 있었는지 생각했다. 금이야 옥이야 상처라도 나면 큰일 날 듯 키웠지만 떠오르는 상처가 없는 게 원망스러운 듯 괴로운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치과 기록이 가장 정확하다는 말에 평소 실종자가 다녔던 치과 전화번호를 찾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이어 “아이들 소지품 중 가장 중요한 게 휴대전화다. 애들 주머니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안내가 나오자 몇몇 가족들은 앞으로 달려나갔다.
진도=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