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오욕의 역사’ 오롯 한국 11번째 세계문화유산 지정될까

입력 2014-04-26 03:47 수정 2014-04-26 15:06

퀴즈 하나. 김한민 감독의 ‘최종병기 활’(2011)과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의 주요 배경은? 영화를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답은 ‘남한산성’이다. ‘최종병기 활’에서는 남한산성의 숲과 성곽 등이 조선시대 병자호란의 배경으로 등장했고, ‘누구의 딸…’에서는 산성 최정상에 위치한 서쪽 수문시설인 수어장대(守禦將臺)에서 바라보는 일몰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경기도 광주 남한산 일대의 남한산성은 조선시대 북한산성과 함께 도성(都城)을 지키던 핵심 산성이었다. 지금은 동·서·남 문루와 장대(將臺)·돈대(墩臺)·암문(暗門)·우물·보(堡)·누(壘) 등의 방어시설 및 군사훈련시설이 남아 있다. 성곽(사적 제57호)과 행궁(사적 제480호) 등 국가지정문화재를 비롯해 유형문화재(6점), 문화재자료(2점), 기념물(2점) 등 유적이 즐비하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 보듯 외침에 따른 굴욕 등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한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을까.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이 2009년부터 추진해온 남한산성 세계유산 등재 여부가 6월 15일부터 25일까지 카타르 도하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돼 관심을 모은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심사기준은 유적들이 얼마나 잘 보존돼 있는지, 이 유적들이 해당 국가의 역사성을 얼마나 담보하고 있는지, 현대인의 삶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고 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춘다. 2009년 6월 세계유산 등재 잠정목록 후보로 선정된 남한산성은 2013년 1월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서를 냈다. 같은 해 6월 예비실사와 9월 본실사를 거쳐 지난 2월 보완자료를 제출했다.

올해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총 49건의 등재 신청 유산 중 사전평가에서 탈락한 9건을 제외한 40건(문화유산 30건, 자연유산 8건, 복합유산 2건)에 대해 최종 심의를 하게 된다. 남한산성은 사전평가에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실사평가에서도 보존관리 등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등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남한산성의 등재 여부는 6월 20∼22일 결정될 전망이다.

둘레 11.76㎞, 면적 52만8000㎡인 남한산성은 백제 온조왕 때 왕성(王城)으로 처음 축조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신라 문무왕 13년(673) 한산주(漢山州)에 주장성(晝長城)을 쌓았는데, 둘레가 4360보로 현재 남한산성이 위치한 곳이라는 기록도 있다. 남한산성이 지금 모습으로 대대적인 보수를 한 것은 밖으로는 후금(後金)의 위협이 고조되고, 안으로는 이괄의 난을 겪은 1624년(인조 2)이다.

인조는 총융사(摠戎使) 이서에게 산성 축조를 명했다. 2년 후 둘레 6297보의 성곽 안에 여장(女墻·성 위에 낮게 쌓은 담) 1897개, 옹성(甕城·성문의 앞을 가리어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작은 성) 3개, 성랑(城廊·성 위에 세운 누각) 115개, 문 4개, 암문(暗門·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만든 작은 성문) 16개, 우물 80개, 유사시 임금이 거처할 행궁(行宮) 73칸을 두었다.

남한산성의 방어는 5군영 중 하나인 수어청이 맡았다. 수어청에는 동서남북 네 장대(將臺)를 두어 각각 진을 치게 했다. 이 가운데 서쪽의 수어장대만 현재 남아 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란했다. 하지만 강화 함락 소식이 전해지자 인조는 세자와 함께 삼전도(三田渡)로 나아가 머리를 땅에 닿으며 항복했다. 자신이 축조한 성에서 당한 치욕이었다.

이후 300여년의 세월이 흐른 1964년 동문을 새로 짓고, 66년 연무관과 현절사, 67년 지수당과 영월정, 69년 남문, 72년 연무대와 이서사당, 74년 연못과 성곽 부분을 각각 보수했다. 90년대부터 남한산성 일대가 등산로로 각광받으면서 주변에 음식점과 러브호텔이 난립하기도 했으나 2000년대 들어 일제 정비에 나서 산성 입구에 주차장과 함께 한옥 음식점 및 숙박시설을 조성했다.

남한산성의 행궁은 조선시대 20여개 행궁 중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을 갖추었다. 국가전란 시 임시수도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다. 또 관아(행정)시설이 300년간 운영된 조선 최대의 산악 군사행정도시이기도 했다. 남한산성이 파란만장한 한국사를 상징하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현대 도시생활과 밀접한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세계유산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경우 한국은 11번째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그동안 해인사 장경판전(1995) 종묘(1995) 석굴암·불국사(1995) 창덕궁(1997) 수원화성(1997)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2000) 경주 역사 유적지구(2000)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 조선왕릉(2009)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2010) 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런데 한국 내에서의 경쟁이 돌발변수다. 서울시도 2012년 ‘서울(한양)도성’을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신청했다. 잠정목록은 등재신청 전에 올리는 자격요건이다. 서울도성은 조선 건국 이후 북한산 등에 축조한 18.6㎞의 성곽이다.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비슷한 시기와 지역에서 조성된 문화유산이므로 목록을 함께 준비해 공동 신청하라”는 권고가 내려진다면 남한산성 등재는 보류될 수밖에 없다.

이광형 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