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입력 2014-04-26 02:44
“세월호 침몰 사고로 많은 사람이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실종자 및 희생자, 그들 가족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마지막 곡으로 준비했습니다.”
지난 20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보이스 오브 스프링(봄의 소리)’이라는 제목으로 콘서트를 가진 소프라노 조수미가 관객들의 앙코르 요청에 답하는 마지막 곡을 불렀다. “아베 마리아 성모여, 방황하는 내 마음 그대 앞에 꿇어 앉아 하소하노니 들어주옵소서. 내 기도드리는 마음 평안히 잠들게 하여주소서. 어린 소녀의 기도를 성모여 돌보아주옵소서. 아베 마리아….”
‘아베 마리아’는 슈베르트가 1825년 영국 시인 월터 스콧의 서사시 ‘호수의 여인’ 가운데 6번째 시 ‘앨런의 노래’를 작곡한 것이다. 호수의 바위 위 성모상에게 아버지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비는 소녀 앨런의 기도를 담은 내용이다. 조수미가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객석에서는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관객도 많았다. 조수미는 이번 공연 전 발표한 솔로 앨범 ‘온리 바흐’에 기도의 노래 15곡을 담았다.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얼굴의 음반 표지에는 절절함이 묻어났다. 세월호 참사 와중에 26일까지 전국 순회공연을 이어간 그는 “무대에 설 때마다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으로 생사를 다투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객선 침몰 사고 이후 클래식 공연의 경우 몇 년 전부터 준비해온 것이어서 취소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연주자들은 무대에서 비통한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애도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앙코르 곡이나 추모곡을 통해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14 교향악 축제’에 참가한 수원시립교향악단은 마지막 앙코르 곡으로 엘가의 수수께끼변주곡 중 ‘님로드(니므롯)’를 연주했다. ‘님로드’는 창세기에 나오는 용감한 사냥꾼으로 영국 작곡가 엘가가 절친한 친구를 잃고 추모하기 위해 쓴 곡이다. 가슴을 파고드는 아련하고 구슬픈 선율 때문에 애도의 뜻으로 자주 연주되는 레퍼토리다.
“이 곡이 끝나면 박수 없이 조용히 해산하자”는 지휘자 김대진의 제안대로 객석과 무대는 모두 기도의 분위기 속에서 연주회를 마쳤다. 앞서 16일 같은 무대에 선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역시 ‘님로드’를 앙코르로 연주했다. 이때도 관객들은 박수 없이 음악을 듣고 조용히 공연장을 떠났다. 18일 교향악 축제 폐막 무대에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은 앙코르 곡으로 성가곡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주여 임하소서’를 연주해 객석을 숙연케 했다.
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연 스위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는 공연 시작 전 추모의 의미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하고 박수 없이 약 1분간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1730년경 바이올린 독주곡으로 작곡된 이 음악은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현(G선)만으로 연주돼 장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7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올려지는 국립오페라단의 ‘라트라비아타’에서도 공연 시작 전 이번 사고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하는 조곡 연주와 자막을 준비했다.
생때같은 아이들을 잃은 가족들의 아픔은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 외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각자 기도하는 심정으로 들려주는 음악인들의 선율이 그들의 마음에 닿아 조금이라도 위로를 얻고 상처를 치유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광형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