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세월호의 루시퍼

입력 2014-04-26 02:44


세월호엔 천사와 악마가 함께 탑승해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후 둘의 정체는 확실히 갈라졌다.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일부 승무원과 승객, 교사들은 목숨을 걸었지만 정작 구조 의무를 지닌 선장과 선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절망을 안겨줬다. 도대체 인간은 천사일까 악마일까.

1960년대에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한 가지 실험을 고안했다. 전문 배우에게 한 사람은 권위를 지닌 교사처럼,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학생처럼 연기하라고 주문한 뒤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 선택된 실험 대상자들에게 학생에 대한 체벌을 집행하게 했다. 체벌은 전기충격을 가하는 것이었는데, 학생의 학습 성과를 개선시키기 위한 행위였다. 그런데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그들은 교사의 권위에 굴복해 학생을 생각 이상으로 잔인하게 고문한 것이다. 실험 대상자들을 바꾸고 일부러 평화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만 선별해 실험해도 결과는 똑같았다. 하지만 악마 같은 그들이 천사로 되돌아올 때가 있었다. 고통을 당하는 학생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을 때 비로소 그들은 하던 짓을 멈추었다.

유사한 실험으로 1971년 미국 스탠퍼드대의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행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있다. 대학 건물 지하의 실험실을 개조해 가짜 감옥을 만든 후 평범한 대학생들에게 간수와 죄수 역할을 각각 맡겼다. 그들에게 정해진 규칙은 죄수의 경우 간수의 말에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것과 간수의 경우 죄수에게 어떠한 물리적 폭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이 실험 역시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간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죄수들을 괴롭혔으며, 죄수 역할을 맡은 이들은 실제 죄수들처럼 행동한 것이다. 심지어 죄수들에 대한 간수들의 학대가 너무 심해져 원래 2주일로 예정되어 있던 이 실험은 6일 만에 중단되어야 했다. 이 실험에서 ‘루시퍼 효과’라는 용어가 탄생됐다. 루시퍼는 원래 천사였는데 신과 자리다툼을 하다가 대천사 미카엘로부터 지옥으로 쫓겨간 악마다. 루시퍼 효과란 이처럼 천사의 속성을 지니지만 동시에 악마의 속성을 갖고 있는 인간의 양면성을 가리킨다. 실험 후 짐바르도 교수는 “썩은 사과가 문제가 아니라 썩은 상자가 사과를 썩게 한다”며 인간이 환경에 따라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를 지적했다.

썩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의 문제보다 그들을 썩게 만든 환경이 무엇이었는지를 철저히 규명하는 일이 바로 살아남은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