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침묵 속의 인내

입력 2014-04-26 02:36

‘수도사들의 아버지’ 안토니 앞에서 제자들은 한 수도사를 칭찬했다. 한번은 그 수도사가 안토니를 만나러 왔다. 안토니는 그를 일부러 무시하면서, 모욕을 얼마나 참고 인내하는지 시험해 보았다. 그가 전혀 모욕을 인내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안토니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밖은 아름답게 치장했지만 안에는 강도들이 들끓는 마을과 같습니다.” 안토니는 수도사가 어디까지 성숙했는가를 보려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어느 정도 인내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도생활은 한마디로 인내의 경험이며 실천이었다. 제대로 된 영성 훈련은 인내를 키웠다. 페르메의 원로 테오돌은 수도생활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제자에게 “그대는 왜 수도사가 되었는가? 시련을 인내하기 위함이 아니었는가”라고 되물었다. 또 다른 원로 앤드류는 수도사에게 합당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가르쳤을 때, 외적으로는 가난과 세상에서의 물러남이며 내면의 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침묵 속에 인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 하루를 참아보자

4세기 사막 수도사들은 자발적인 가난과 고난을 겪으면서 인내하는 삶을 살아갔다. 그러나 메마른 사막에서 살다 보니 살기가 어려워 자신의 수도원을 떠나 이주할 생각을 자주 했다. 그들은 가진 것도 없고 수도원도 많았으니 쉽게 이사할 수 있었다.

떠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 몇 명의 수도사들이 있었다. 여기서 더 이상 살기가 어렵다고 결정하고 원로 암모나스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 암모나스는 그것이 환경적인 괴로움 때문에 생겨난 것을 알고는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준 후에 원래 살고 있던 곳으로 돌려보냈다.

암모나스는 그들이 어렵지만 더 인내하기를 원했다. 이렇게 원로의 지혜로운 조언을 따르는 것도 중요한 해결 방법이지만 한 번의 상담으로 모든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인내하고 살았을까? 그 방법은 다음 일화 속에 나타난다.

한 수도사는 9년 동안 수도원을 떠나고 싶은 유혹과 싸웠다. 매일 아침 그는 길을 떠나려고 짐을 꾸리고는 “주님을 위해서 오늘 저녁까지 참아보자”고 말했다. 밤이 되면 스스로에게 “내일 아침에 이곳을 떠나야지”라고 말하곤 했다. 그가 이 일을 9년 동안 반복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서 이 유혹이 물러나게 하셨고 마침내 평화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위와 비슷한 내용의 다음 일화는 이 유혹과 싸우는 방법이 사막에서 일반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수도사 에나톤의 테오돌과 루시우스는 떠나고 싶은 생각에 늘 시달렸는데 추운 계절에는 “이 겨울이 지나면 떠나겠다”고 말하고, 여름이 오면 “이 여름이 지나면 떠나겠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50년을 싸우면서 한 자리에 머물렀다고 한다.

원로 수도사들은 제자들에게 이 교부들의 일화를 항상 기억하라고 가르쳤다. 사막 교부들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인내심이 없음을 파악하고 인내할 시간을 길게 잡지 않았다. 한 계절만, 오늘 하루만 참아보자고 스스로 타일렀다. 이 인내 훈련이 없었다면 수도원운동은 생명력이 길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수도원에 가지 않아도 가정과 교회, 직장 등 모든 환경에서 인내를 키울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인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것을 배웠다면 어려운 자리에서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 부부가 인내하지 못하고 결별하고, 다니던 교회도 직장도 쉽게 떠난다. 갈등이 생기면 떠나는 것으로 해결한다.

침묵 속에서 인내해야 할 때

우리에게 인내라는 것은 별로 비중 있는 관심 사항이 아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실까. 성경은 인내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거듭 강조한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주님께서는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19)고 말씀하셨다. 종말에 우리 목숨을 구하는 것은 인내이다(마 10:22). 주님은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약 1:3∼4)고 명령하셨고 우리 인내의 수준이 완전하기를 바라신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기에 같은 인격을 원하신다(롬 9:22, 벧전 3:15). 인내는 주님을 닮은 확실한 증거다.

이토록 인내가 중요하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매일 삶에서 인내를 실천하도록 많은 기회를 제공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회를 흘려보낸다.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은 우리의 선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지상의 것을 참음으로 천상의 것을, 일시적인 것을 견디어서 영원한 것을 얻게 하신다. 그러므로 비록 잘 풀리지 않는 일들이 있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도 인내를 키울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견뎌야 한다. 슬픔이 우리 모두를 짓누르는 이때야말로 침묵 속에 인내해야 할 때다.

김진하 <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