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10) 니카라과 텔리카(Telica)의 조용히 기다리는 아이들
입력 2014-04-26 02:41
먼지 때 낀 투박한 야외 테이블 위로 접시가 놓여졌다. 기본 메뉴를 주문한 지 3분 만에 나온 저녁이다. 체력이 방전된 자전거 여행자에게 단백질과 탄수화물 섭취는 필수다. 하지만 한정된 경비로 인해 늘 풍성한 식사를 할 순 없다. 하루 경비 3달러다. 텐트를 치든 소방서나 경찰서를 방문하든 잠은 걱정되지 않는다.
결국 하루 생활비를 식사에 지출하게 된다. 아침, 점심은 대충 때우거나 굶기도 다반사니 저녁만큼은 제대로 먹자고 다짐했던 터다. 그렇다고 특별한 메뉴는 아니다. 밥과 고기, 샐러드 그리고 수프가 한 세트다. 중앙아메리카 서민들이 흔히 먹는 단출한 식단이다. 보통 1.5달러 정도 한다. 고기를 옵션으로 몇 점 더 요구하면 가격은 두 배가 된다.
오늘은 제법 넉넉한 날이다. 고기를 따로 주문했기 때문이다. 니카라과 텔리카(Telica)로 가는 길, 목적지를 향해 자전거를 몰다 잠시 시골 길가 식당에 자전거를 세웠다. 이방인의 등장에 호기심 어린 동네 주민들이 가득하다. 내가 먼저 한 번 웃어주니 금세 밝아진다. 아이들이 내 주위로 몰려든다. 처음 만난 이에게 호구조사를 하는 건 한국이나 이곳이나 똑같다. 이것저것 아주 사소한 것까지 물어보는 것도 일상다반사다. 나는 서툰 스페인어로 차근차근 대답해 주었다.
어느 정도 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도 녀석들은 좀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3명의 아이들은 내 주변에 머무르면서 시간을 보냈다.
“손님 밥 먹는데, 여기서 뭐해?”
주인이 아이들에게 한마디 했다. 아이들은 잠시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녀석들은 나의 표정을 살폈다. 식사는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하지만 일찍 젓가락을 놓았다. 고기를 괜히 시켰다는 후회가 들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런 경우가 별로 없는데 웬일로 음식을 반이나 남겼다. 오후에 노점에서 구입한 몇 개의 바나나를 먹은 탓이 컸다.
숙소를 구하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계산을 하고 자전거를 타려는데 갑자기 테이블 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아이들 사이에 실랑이가 있는 듯했다. 녀석들은 내가 떠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곤 서로 먼저 찜했다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몇 마디 논쟁이 오고 갔다. 잠시 후 자기네들끼리 합의를 본 모양이다.
곧 돌아가면서 남은 음식을 깨끗이 털어냈다. 익숙해 보였는지 주인도 별반 제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녀석들은 아까부터 ‘음식을 남기지 않을까’ 하며 내 주변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들은 구걸하지 않았다. 그저 손님이 남긴 음식을 먹으며 끼니를 때웠다. 그게 애처롭게 느껴졌다. 식당에서 1.5ℓ 콜라를 구입했다. 주인에게 컵도 달라 했다. 두 잔만 마셨다. 나머지는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나왔다.
자전거 안장에 오르기 전 테이블을 보니 아이들이 혹시 남기고 가는 건지, 내가 다시 돌아오는 건지 판단이 되지 않았는지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나는 마셔도 좋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안장 위에 올랐다. 아이들 표정이 환해졌다. 한 녀석이 내게 손을 흔들고, 다른 한 녀석은 콜라를 마시고, 나머지 한 녀석은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고 손 흔들던 그 녀석은 아차 싶었는지 친구가 마시는 양을 체크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귀여운 아이들. 조용히 음식을 기다리던 니카라과의 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 생명의 떡(요 6:35)이 주어지길, 하나님의 축복이 항상 함께하길.
문종성 (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