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고난과 치유] 크리스천 봉사 현장
입력 2014-04-25 18:01 수정 2014-04-26 02:47
“혹시 필요한 거 있으세요?”
“ … ”
“식사 잘드시고 힘내세요”
“ … ”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 이레째인 지난 22일 밤 9시30분쯤 팽목항 시신 수습 컨테이너에서는 통곡소리가 이어졌다. 사망자를 확인한 가족들의 울음소리였다. 현장의 가족들은 생환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내려놓고 있다. 시신만이라도 수습되기를 바라던 가족들은 한밤중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과 딸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이날 하루 수습된 시신만 22구. 울 힘조차 없는 희생자 가족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희망이 사라진 밤, 사랑하는 이를 삼킨 바다는 야속하리만큼 고요했다.
차에 탄 가족들, 말이 없었다
비슷한 시각 컨테이너 밖으로 세 사람이 나와 있었다. 밤이었지만 실종자 가족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뒤집어쓴 담요가 그랬고 무표정한 얼굴이 달랐다. 잠시 후 일행 중 여성 한 명이 기자를 향해 말했다. “혹시 체육관까지 가면 태워주세요.”
팽목항에서 진도실내체육관까지는 차로 30분이 걸린다. 매일 오전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셔틀버스가 오가지만 이날 그들은 셔틀버스를 타지 않았다. 자녀들의 구조 소식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본보 차량 뒷좌석에 오른 그들은 “오늘도 소식이 없네요. 새벽에 와서 여태 아들을 기다렸는데…”라고 했다. 기운 없는 목소리, 무거웠다. 여성들은 “춥다”며 몸을 떨었다. 얼른 자동차 히터를 켰고 열기가 빨리 나오도록 액셀러레이터를 꽉 밟았다.
체육관까지 가는 차 안은 고요했다. 기자는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듣기만 했다. 가족들 역시 말이 없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응시했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한 여성은 재개된 단원고 학생들이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했고, 남은 자녀로 추정되는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학원에 잘 갔느냐’고 물었다. 간간이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 속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도 담겨 있었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를 소개해준 엄마들이 힘들어한대. 어떡하지….”
차는 예정보다 5분 빨리 체육관에 도착했다. 그들은 “감사하다” 말하고는 발길을 재촉했다. 가족들은 다시 밤새 체육관에서 기다려야 한다. 추가로 시신이 수습되면 확인하기 위해서다. 대부분 신원 미상이었다. 23일 오후 수습된 시신 상당수가 손가락 골절로 밝혀지면서 가족들의 슬픔은 극에 달했다. 비극이었다. 어떻게 이들을 위로하고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진도 현장에서 자원봉사 중인 크리스천 봉사자들에게 물었다.
먼저 듣고 말은 나중에
조원식(56) 진도 신진교회 목사는 진도군교회연합회 소속으로 팽목항에서 봉사활동을 총괄 지휘하고 있다. 그는 자원봉사자들이 오면 세 가지를 당부한다. 첫째, 떠들거나 웃지 않는다. 최대한 절제하면서 말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둘째, 봉사의 최우선 대상은 가족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물품이 들어올 때는 가족 우선으로 분배한다. 봉사단원들은 실제로 23일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에서 트레이닝복과 물품 박스, 여성용 온열기를 싣고 오자 가족들이 쉬고 있는 숙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전달했다. 셋째는 가족이 요구하는 대로 해준다. 지난 22일에는 여성용 속옷과 챙 달린 모자, 핫팩 등을 전달했다. 사고 초기와 달리 지난 20일부터 진도 날씨가 좋아지면서 햇볕이 따가웠다. 그러자 가족들 사이에서는 챙 달린 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고 봉사단은 이를 즉시 반영했다.
물품 전달 과정에서 봉사자들이 빠뜨리지 않는 멘트가 있다. “혹시 필요한 것 있으세요? 구해 드릴게요”이다. 다른 말은 일절 하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고 싶더라도 참아야 한다. 지금은 자신의 의견을 전할 단계가 아니다. 들어야 한다. 슬픔을 당한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조 목사는 “간혹 가족들이 먼저 다가와 기도를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목사를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마다 어디서든 손을 잡고 기도한다고 했다. 확신에 찬 어조로, 때로는 눈물과 함께. 조 목사에 따르면 가족들이 분노로 가득해 청와대로 가자던 날 기도 부탁이 가장 많았다고 했다.
노란 야광점퍼를 입고 분주히 움직이는 조 목사는 가족들을 위로할 방법은 특별한 게 없다고 했다. 그저 같이 손을 잡고 들어주는 게 전부다. 구체적인 안정 방법은 상황이 종료된 이후라는 것이다. 그는 “침몰 사고 이레째가 되던 지난 22일에야 가족들이 물품을 가져가면서 처음으로 ‘고맙다’는 말을 했을 정도”라며 “아직도 가족들은 경황이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한국구세군 자선냄비 본부 서준배 사관도 첫날부터 실종자 가족들을 지켜봤다. 그는 구세군이 마련한 ‘희망의 밥차’ 봉사 책임을 맡고 있고 21일 저녁부터 열리고 있는 기도회를 인도한다. 그는 “가족들은 식사하는 모양부터 다르다”며 “억지로 나오는 데다 먹는 둥 마는 둥 한다”고 했다.
그는 “한번은 5∼6명의 가족들이 음식을 놓고서도 먹지 못했다. 결국 그냥 두고 다시 돌아가더라”며 “힘내시라는 말밖에는 못한다. 원래는 일찍 상경하려고 했지만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머물러 있기로 했다”고 말했다.
구세군은 하루 세 끼 국과 밥 위주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북어해장국과 쇠고기 뭇국, 육개장을 비롯해 사고 초기엔 전복죽 등을 끓여 가족을 찾았다. 지난 17일부터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한 봉사자는 “가족들은 대개 밥을 조금만 달라고 요구한다”며 “많이 드시고 힘내시라는 말밖에는 못한다”고 했다.
서 사관은 사고 8일째인 23일 “이제 사후관리가 중요하다. 이후에 계속될 고통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다니던 직장과 사업장, 전업주부로서의 일을 놓았기 때문에 경제적 지원 등도 교회가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늘을 원망하는 이들에겐
사고 당일부터 팽목항에 천막을 설치하고 봉사활동에 나선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단장 조현삼(광염교회) 목사는 “처음엔 말없이 가족들과 밤을 샜다”며 “죽을 끓여 가져가 며칠동안 찾았더니 한 숟가락 들었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조 목사는 팽목항 가족대책본부 상황실 텐트에서 추위에 떠는 가족을 위해 난로까지 설치했다.
조 목사는 “지금은 실종자 가족들을 말로 위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같이 있어주면서 공감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실종자 가족 중 신자들의 경우는 신앙이 흔들릴 수도 있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도대체 왜’를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조 목사는 “어차피 한 번은 지나가야 하는 단계”라며 “원망을 들어주면서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조언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사고 이후 좋지 않았던 현장 날씨를 예로 들며 “내리는 비를 보면서 하늘도 슬퍼서 울고 있다고 말하는 게 긍정적인 해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정림(63) 진도 칠전교회 목사는 “고난당한 사람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다”며 “남의 고난이 아니라 나의 고난처럼 생각하고 기도하자”고 말했다.
진도=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