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고난과 치유] “희생자 가족 애도그룹 만들어 함께 극복”
입력 2014-04-25 18:00 수정 2014-04-26 02:48
채정호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온 국민이 외상성 애도 겪는 중”
세월호 침몰 참사는 모든 국민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실종자는 줄고 사망자 수만 느는 냉혹한 현실에서 대다수 국민은 어떠한 희망도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11일째인 오늘, 우리는 어떻게 이 아픔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까. 또 교회는 희생자 가족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지난 22일 채정호(53)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만나 의견을 들었다. 그는 대한불안의학회 이사장이자 트라우마 전문가이며 높은뜻푸른교회 장로이다. 인터뷰 내내 그에게 자문하려는 기자들의 연락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독교인은 고난에서 의미를 찾기도 한다. 어쩌면 실종자 가족에게 이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신앙인이라면 이번 사건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사건에 의미를 둬선 안 된다. 사건 이후 삶에 주는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이걸 다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종교 없는 이들이 오해하기 십상이다. 신앙인이라면 ‘사건 이후, 왜 살아야 하느냐’를 집중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특히 희생자라면 더욱 그렇다. 대다수 부모에게 자녀는 삶의 이유다. 삶의 이유를 잃었을 때 인생은 뭐고 아픔이 뭔지를 생각해 보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고난의 의미를 찾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요구조차 잔혹한 거다. 다만 신앙이 없어서 그랬다는 죄책감은 멀리해야 한다. 신앙인은 죽음 너머를 보고 초월해야 한다.”
-생존자나 자녀 잃은 부모가 초월하는 게 쉽게 되겠나
“가령 백혈병으로 죽은 자녀의 부모가 이 병 연구기금 내는 걸 ‘초월’이라 하는데 국내 정서로는 아직 힘들다. 하지만 너무 초월적으로 살아서도 위험하다. 큰 사고 후 ‘예수님, 빨리 데려가시오. 자녀 보러 가야 한다’고 기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건 바른 신앙인의 태도가 아니다. 트라우마를 회복하려면 삶으로 빨리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애도 기간이 너무 길면 안 된다. 생존자 역시 슬퍼만 하도록 내버려 둬선 안 된다. 이들에게 ‘네가 어떻게 웃어’라며 죄책감 심어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존자들이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와 죄책감, 우울 등을 호소하고 있다
“당연하다. 지금 상황에서 상처 받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 고통스럽다. 청소년에게 ‘나는 살고 친구가 죽었다’는 건 정말 엄청난 충격이다. 이들에게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라고 말하는 건 위험하다. 중요한 건 ‘어떻게 안전하게 힘들 것인가’이다. 트라우마를 극복치 못한 일부는 평생 상처를 안고 산다. 스스로 극복하긴 어렵다. 생존자 모두와 함께 고통을 극복한다는 생각으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치료에 임해야 한다.”
-생존 과정에 입은 상처는 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의 대부분이 일상으로 돌아온다. 전보다 상태는 나빠졌지만 삶으로 다시 돌아간다. 10명 중 8명이 여기에 해당한다. 2명 중 1명이 PTSD를 겪는데 우울증이나 자살 등으로 병이 커질 수 있다. 나머지 1명은 외상 후 성장(PTG·post traumatic growth)을 경험한다. 시련을 겪었음에도 상태가 좋아지는 경우다. 대표적인 예로 닉 부이치치를 들 수 있다.”
-상처를 극복하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간 차이가 있을까
“심리적 회복력의 차이다. 이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금전·대인관계 등 사회경제적 자원이 많을수록 잘 극복한다. 그렇지만 삶의 목적, 낙관성, 신앙 등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자원도 상처를 극복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신앙인이 많이 가지는 자질이다. 하지만 이는 경험에 의해 후천적으로 학습된다. 그래서 대체로 청소년이 트라우마에 취약하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또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들이 가장 문제다. 학생들은 학교를 다닐 때까지는 지속적으로 치료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은 상황이 다르다. 한곳에 모여 있는 게 아니다. 한 명이 자살하면 보통 20명 정도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경험을 한다. 사망자와 실종자를 300여명으로 본다면 6000여명이 아픔을 겪는 셈이다. 이들이 겪는 슬픔을 ‘외상성 애도’라 부른다.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고 치료를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이 지나도 계속 관심을 보이자. 회복기간을 길게 봐야 하는데 자꾸 관심이 식는 게 문제다. 이번 희생자와 3살밖에 차이 안 나는 천안함 사고는 4년 만에 거의 잊혀지지 않았나. 기독교인이라면 성경말씀처럼 같이 애곡해 달라. 이들에게 ‘당신 혼자 아니다, 곁에 우리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게 신앙인의 책무다. 지금 희생자 가족에겐 어딘가에서 넋두리하고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 절실하다. 정부에서 하는 공식적 채널은 접근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식 죽은 내가 웬 사치냐’면서 안 오는 사람이 적지 않아서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면
“희생자 가족에게 ‘애도그룹’을 만들어 주자. 거창할 것도 없이 희생자 부모 5∼6명이 모여 커피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자녀 추억 보내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맞벌이 부부는 자녀와 함께 있을 시간이 적어 추억이 없는 경우 적잖다. 자녀 친구나 교사가 ‘○○는 여기 자주 갔다’ ‘뭘 좋아했다’는 말을 나누고 장소를 직접 가보면서 자녀를 추모하는 의식을 가져보자. 이런 방식으로 상처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바람직하다.
-사건을 언론으로 시시각각 지켜본 국민 역시 정신적 고통, 정부에 대한 불신감 등을 호소한다
“트라우마는 긍정과 부정 두 방향으로 진행된다. 부정적이면 더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사건 해석은 스스로 하는 거다. 수학여행 안 가고, 배 안타는 게 대안은 아니다. 교통사고 났다고 모두 차 안 타는 건 아니지 않나. 순전히 인지적 오류다. 결국 자신이 가진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거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볼수록 인생이 불행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교회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교회는 원래 아픈 사람과 함께하는 곳이다. 희생자에게 고아와 나그네 대접하듯 하길 바란다. 고교생이 아닌 생존자 99명은 안산이 아닌 다른 지역에 산다. 교회는 지역마다 있지 않나. 교회가 이분들 돌봐 달라. 바람으로는 한국교회가 트라우마 관리하는 재단을 설립하면 어떨까. 국가에서 운영하면 접근성에 한계가 있다. 한 예로 보건복지부 산하면 교사들은 교육부 소관이라 치료 받기 어려워진다. 민간단체인 교회에서 뜻을 품고 진행했으면 한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