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용 구명벌, 보관함 등 페인트칠로 굳어져 무용지물
입력 2014-04-25 03:17
선박 침몰 사고 발생 시 구명벌(구명뗏목)은 승객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핵심 구조장비다. 안전핀을 뽑고 레버를 좌우로 흔들면서 당기면 터져 부풀어 오르는 일종의 고무보트다.
세월호도 갑판 양쪽에 25인승 구명벌 46개가 설치돼 있었다. 탑승객 476명 전원이 타고도 남는 개수였지만 사고 당시 작동된 건 1개뿐이었다. 해경이 촬영한 구조 동영상을 보면 당시 바다에 던져진 구명벌 중 1개가 펴지지 않아 이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운업계에서는 세월호뿐 아니라 다른 여객선들도 평소 관리를 안 해 비상시 사용할 수 없는 구명벌이 많다며 전수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 관계자는 24일 “해경이 정기검사 등을 통해 구명벌을 점검하고 있지만 3개가량 표본조사에 그치고 있다”며 “그나마도 오래된 것은 열어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구명벌에 대한 안전점검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명절기간 등 특정 시기에는 경각심 고취 차원에서 해경이 특별점검을 하지만 평소에는 해운조합에 점검을 맡겨 두고 있다.
인천지방해운항만청 관계자는 “(사고 후) 검찰을 비롯한 합동점검반이 여객선을 대상으로 특별점검을 실시하고 있으나 구명벌을 한 개 정도 터뜨려 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중 카페리호 항해사 출신인 김모(53)씨는 “여객선들이 구명벌 보관함 뚜껑은 물론 보관함을 선체와 연결하는 끈까지 선박용 페인트로 여러 번 덧칠해 무용지물인 구명정이 많다”고 말했다. 페인트가 접착제처럼 점성이 강해 굳으면 구명벌을 꺼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구명벌의 레버를 제치더라도 구명벌이 달라붙어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다.
김씨는 “사정이 이런데 20년 이상 쓴 구명벌도 ‘양호’라는 결과가 나오는 건 검사가 형식적이고 대충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월호는 지난 2월 19일 한국선급 여수지부로부터 구명벌 등 구명설비가 양호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인천해경도 2월 25일 특별점검에서 ‘양호’ 판정을 내렸다.
세월호 침몰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검찰은 구명벌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안전점검 업체를 압수수색했다.
인천항만 관계자들은 “제2의 세월호 사태를 막으려면 모든 여객선의 구명벌이 제대로 작동되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해경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전수조사를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표본조사만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