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도 없고 음원 소비도 줄고… 가요계는 지금 ‘잔인한 4월’

입력 2014-04-25 02:24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상차림인데 정작 손님이 없다. 그나마 누가 지나가도 구경 좀 해보라고 말을 꺼내기도 힘들다. 대화를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우울한 표정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얼어붙은 가요계 모습이다.

◇몇 년 동안 준비했는데=당초 4월은 소위 ‘믿고 듣는’ 가수들과 ‘신인 아닌’ 신인들의 격전이 예고됐다. 이선희는 데뷔 30주년을 맞아 5년 만에 정규 15집을 내놨다. 10곡 가까이 작사·작곡에 참여했고 타이틀곡 ‘그 중에 그대를 만나’의 반응도 좋았다. 이승환은 정규 11집을 선보였다. 4년 만의 신보로 콘서트를 통해 컴백해 ‘라이브의 황제’ 위엄을 유감없이 뽐냈다.

이소라도 6년 만에 록을 전면에 내세운 정규 8집을 발표했다. 전곡을 작사했고 오랫동안 기다려준 팬들을 위해 가사와 악보를 선 공개하는 등 이례적으로 홍보에도 신경을 썼다. 한때 가수를 은퇴했던 임창정도 정규 12집으로 돌아왔고 조성모도 ‘변화의 바람’이라는 앨범 타이틀로 4년 만에 기지개를 켰다. 소속사 분쟁으로 한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박효신도 자전적인 신곡 ‘야생화’를 들고 나왔다.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으로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린 참가자들도 일제히 데뷔 앨범을 들고 가수 신고식을 치렀다. 지난해 SBS ‘K팝 스타 2’에서 우승한 그룹 악동뮤지션은 7일 발표한 첫 앨범 ‘플레이’가 26일자 빌보드 월드앨범 차트에서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타이틀곡 ‘200%’는 국내 각종 음원 차트를 초토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K팝 스타 1’ 우승자 박지민이 소속된 피프틴앤드가 발표한 디지털 싱글 ‘티가 나나봐’도 차트 상위권에 올라있다. 여기에 Mnet ‘슈퍼스타K 5’ 우승자 박시환, ‘슈퍼스타K 4’ 출신 에디킴, MBC ‘위대한 탄생 2’ 출신 에릭남, ‘K팝 스타 2’ 출신 이천원 등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무대도 없고 찾지도 않고=하지만 저마다 스타트는 빨랐는데 좀처럼 가속이 붙지 않고 있다. 세월호 침몰로 실종자 가족은 물론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웃고 즐길 때가 아니라는 분위기가 확산 중이기 때문이다. 지상파 3사와 케이블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일찌감치 결방을 결정해 신곡을 선보일 무대 자체가 사라졌고, 공들여 찍은 뮤직비디오도 예능 말미가 아닌 인터넷 커뮤니티와 트위터 등 SNS에서만 소비되고 있다. 언론사 인터뷰와 프로모션, 콘서트,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다.

음원 소비도 급감했다. 국내 음원 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하는 멜론은 지난 16일 사고 직후 방문자 수와 페이지뷰가 동반 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엠넷닷컴도 방문자 수가 감소했다. 신보를 낸 가수들이 치고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존 차트를 선점한 악동뮤지션과 에이핑크가 계속 상위권을 유지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수들은 아예 컴백 시기를 전면 재조정하고 있다. 엑소는 뮤직비디오와 쇼케이스를 모두 공개했지만 정작 음원 발매를 하지 못했고, 비스트·인피니트·빅스·지나도 컴백을 연기했다. 양희은과 박정현 등 기성 가수들도 신곡 발표를 늦추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마냥 컴백을 미룰 수도 없다는데 있다. 5월 말부터 사실상 월드컵 시즌에 돌입하고 여름 시즌송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가요계 한 관계자는 “이달 내려던 신곡들이 다음 달 초순에 한꺼번에 쏟아져 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며 “봄을 겨냥했지만 사고 여파로 아예 월드컵 뒤인 가을로 컴백을 미루거나 음원 발표만 하는 가수들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