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LG 감독 전격 사퇴 왜?… 지나친 ‘프런트 야구’에 자존심 상한 듯
입력 2014-04-25 02:49
지난해 11년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던 프로야구 LG의 김기태 감독이 개막 18경기만에 23일 지휘봉을 내려놨다. 성적 부진 책임이 표면적인 자진사퇴 이유지만 개막 한달도 안된 시점이어서 그의 사퇴를 둘러싸고 온갖 설들이 나오고 있다.
◇LG에 무슨 일이 있었나=2011년 10월 김 감독 부임 당시 LG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부임 첫해 소속팀 선수들이 승부조작 파문에 연루되는 악재가 터졌고, 조인성 등 주축 자유계약선수(FA)들이 이적하면서 전력누수가 심각했다. 지난해에는 임찬규의 물벼락 해프닝, 리즈의 빈볼 파문 등이 있었다. 올 시즌에도 지난 20일 한화전에서 벤치클리어링 사태가 벌어졌다. 전 구단을 통틀어 LG가 유독 사건이 많았다. 그때마다 구단은 감독과 선수를 보호하기보다는 김 감독을 앞세워 사태진화에만 급급했다.
김 감독의 사퇴설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두산에 역전패한 직후 김 감독은 구단에 사의를 표명했다. 앞서 2012년 LG가 4강진출에 실패했을 때, 2013년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에 빠졌을 때는 구단에 의한 감독 교체설이 파다했다. 김 감독은 현장의 사령탑을 흔들어내는 프런트 때문에 힘들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수 시절부터 카리스마가 돋보인 김 감독은 고참들을 예우하고, 신예들에게도 기회를 주며 팀을 재건했다. 그 결과 지난해 정규시즌 2위에 올라 11년만에 LG에 가을야구를 선사했다. 하지만 시즌 뒤 같은 서울 연고의 두산, 넥센보다 연봉 인상률이 낮아 선수들의 박탈감이 커졌고, 구단은 에이스인 리즈의 공백을 메울 전력보강에도 실패했다.
◇지나친 프런트 입김=LG는 그동안 구단 고위층과 프런트의 입김이 드세 현장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따라서 LG 감독은 수명이 짧아 ‘감독의 무덤’으로 불리기도 했다. 1994년 ‘신바람 야구’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군 이광환 감독은 1996년 성적 부진으로 중도 하차했다. 2000년 부임한 이광은 감독도 이듬해 자진 사퇴했고 김성근 감독은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팀을 이끌었으나 구단 고위층과의 마찰로 경질됐다. 이광환 감독이 돌아왔지만 1년 만에 지휘봉을 다시 내려놨고 뒤를 이은 이순철 감독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김재박 감독이 3년 계약을 채웠지만 2010시즌 파격적인 5년 계약으로 지휘봉을 잡은 박종훈 감독 역시 2년 만에 사퇴했다.
김 감독은 지난 시즌 후 LG 코칭스태프 자리이동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LG의 성공을 도운 김무관 타격코치와 차명석 투수코치가 2군과 잔류군 책임자로 밀려났다. 지난 시즌 팀 평균자책점 1위로 이끈 차 코치가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떠나자 김 감독은 구단에 섭섭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어 올 시즌 성적이 곤두박질치면서 김 감독의 뜻과 무관하게 1·2군 코치 보직이동 소문이 나돌자 사퇴 결심을 굳혔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장의 사기를 무시한 프런트의 입김이 젊은 지도자의 의욕을 꺾어버린 셈이다.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