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온 이유는 ‘사랑’… 표성흠 장편소설 ‘목화’
입력 2014-04-25 02:18
원나라에서 반출이 금지된 목화씨를 몰래 숨겨 고려로 돌아왔다는 문익점(1329∼1398)은 분명 영웅이다. 그러나 문익점에겐 화려한 영웅담 대신 붓두껍에 목화씨를 가져온 일화만 존재한다.
표성흠(68·사진)의 장편소설 ‘목화’(산지니출판사)는 이런 문익점의 획일화된 일화에서 벗어나 문익점의 어린 시절부터 생을 다할 때까지 일대기를 그려나간다. 새로운 문익점의 탄생이다.
익점의 본래 이름은 익첨이었다. “호마를 탄 저 오랑캐들이 경상도 땅 강성현을 휩쓸고 지나간 것은 바람처럼 빠른 일순의 일들이었지만 저들이 남기고 간 여러 흔적들은 아직 남아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중략) 익첨은 아무리 재미난 알이 있어도 어머니가 찾으면 그 놀이를 중단할 정도로 효심이 깊다”(11쪽)
그러다 스승인 익제 이제현이 ‘익점’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준다. 끝 자를 ‘점점 점(漸)’자로 바꾼 것.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보고 깨달아 그것을 행하라는 의미였다.
문익점의 어린 시절을 시대상을 뒷받침하는 상상력으로 꼼꼼하게 복원한 작가는 이어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공민왕의 개혁 정치, 새로운 국가 조선을 건국하려 했던 신흥세력, 갑작스럽게 닥친 왜구의 침략 등 굵직한 역사 속 사건들 속에 문익점을 접목시키며 이야기의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이윽고 과거 시험에 합격한 문익점은 문서기록을 담당하는 서장관으로 기용되어 다른 계품사 일행들과 원나라로 떠난다. 그러나 계품사는 덕흥군의 계략에 빠져 원의 편을 들게 되었고 이에 동조하지 않는 문익점은 교지(현재의 베트남)로 유배를 가게 된다. 이때부터 문익점의 신비로운 모험이 시작된다.
교지로 가는 동안 자기를 호송하던 호송원이 악어에 물려 죽자 문익점은 밀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냥을 하는 등 온갖 모험을 펼치고 이후 목화씨를 가져오기까지 문익점의 모험을 역사 속에 가두지 않고 작가는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자유롭게 펼쳐낸다.
“익점은 처음으로 목화송이를 뜯어내 그 속에 든 씨앗을 만져본다. 부드러운 솜털 속에 새까만 씨앗이 여럿 들어 있다. 솜털을 얼굴에 대어보니 따스한 느낌이 전해 오는 것 같다. 씨앗은 딱딱한 것이 솜털이 그대로 붙어 있다. 그는 이걸 어디다 숨겨갈까 고민하다가 붓대 속에 넣어가기로 한다.”(189쪽)
표성흠은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머나먼 유배 길에서 무엇 때문에 목화씨를 가져올 생각을 했을까, 그게 이 소설의 테마”라며 “헐벗어 추위에 떠는 민초들을 위한 문익점의 실천력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라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