戀歌로 부르는 애도의 방식… 강은교 시집 ‘바리연가집’

입력 2014-04-25 02:18


강은교(69·사진) 시인의 열세 번째 시집 ‘바리연가집’(실천문학사)은 애도(哀悼)의 가장 지극한 방식은 연가, 즉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서류의 빈칸을 채워나가다가/ 변호사는 그 남자의 직업란에 이르러/ 무직이라고 썼다/ 그 여자는 항의하였다, 그는 무직이 아니라고, 시인이며 꽤 유명한 민주 운동 단체의 의장이었다고,/ 얼굴이 대리석 계단처럼 번들번들하던 변호사는 짐짓 웃었다, ‘법적으로는 무직이지요, 취미라든가 그런…….’/ 그 남자는 순간 한쪽 팔 떨어져 나간 문이 되었다”(‘詩, 그리고 황금빛 키스’ 부분)

이 시에 등장하는 남자는 강은교 시인과 함께 ‘70년대’라는 동인을 함께 한 남편이자 시인인 임정남이다. 그는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설 자리가 없었다. 시에 나오듯 이혼 사유서에 ‘무직’으로밖에 기재될 수 없었던 사람. 시인으로서도 시집 한 권 남길 수 없었던 그가 세상을 뜬지 10여 년 세월이 흐른 뒤 강은교는 연가를 통해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이 애도의 방식으로 꺼내든 매개체는 우리 전통신화 속 주인공인 바리데기이다. 그는 스스로 현대판 바리데기가 되어 이렇게 노래 부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나는 그걸 발견하였지/ 당신이 버리고 간 시는 총 다섯 편이더군/ 그때 눈이 왔었는지, 만년필로 쓴 시가 눈물방울에 얼룩져 있었어/ (중략)/ 이젠 금빛으로 누래진 어떤 문학잡지 골짝 깊이 누워 있었어, ‘진보연합’이라고 쓴, 귀퉁이가 닳을 대로 닳은 봉투에 소중히 담겨서”(‘봉투’ 부분)

시인은 고인이 된 남편을 포함한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젠가 닥칠 자신의 죽음까지도 예감하고 있다. “오늘 석 달 치 항경련제를 처방받았으니 6월 22일까지 나의 목숨은 유예되었다// (중략)// 경련은 나의 스승, 나의 시, 나의 마지막 첫사랑”(‘나의 거리―강은교 씨를 미리 추모함’ 부분)

시인은 평생을 괴롭혀온 몸의 경련을 잠시나마 잠재워주는 딜란틴과 바리움 그리고 테그레톨과 라미탈 등과 같은 약의 이름을 부르면서, 고통이 있음으로써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삶의 비의를 관통하고 있다. 그가 바리데기를 처음 호명한 것은 첫 시집 ‘허무집’(1971)에서 선보인 연작시 ‘비리데기(바리데기) 여행의 노래’를 통해서다. 이제 시력 46년에 이르러 시인은 다시 바리데기를 호명하며 생사의 한계를 초극하는 연가를 부르고 있다. “운조가 걸어간다/ 운조가 걸어간다/ 푸른 지평선 황토치마 벌리고/ 한 모랭이 지나 은빛 냄비 사이로/ 두 모랭이 지나 은빛 국자 사이로/ 운조가 걸어간다/ 마음 떨며 운조가 걸어간다// 이제 그가 올 시각/ 비애로 불룩한 여행 가방 끌고 그가 올 시각”(‘발자국 소리’ 부분)

강은교가 꺼내든 바리데기의 노래는 세월호 침몰 참사로 야기된 국가 차원의 추모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전범처럼 보여준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